brunch

매거진 플로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 Nov 18. 2022

수능 : 트라우마

불안은 객관적 구조가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수능이 다가오는 11월만 되면 온 몸에 긴장이 서린다. 입시라면 벌써 10년 가까이 지난 경험인데도 불구하고, 불안을 몸이 기억하는 듯하다. 당시에 겪었던 감정들이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이미 다 끝난 일이라 나를 달래 보아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는 습관이다. 수능 때만 되면 당시의 내가 떠오르고, 같은 처지에 놓인 학생들의 삶을 상상한다. 어쩌면 수십 년째 유사한 틀로 평가받고 있는 공동체,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마음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수능 날만 되면 온 국민이 행동 거지를 조심할 정도이니 그럴 만도 하다.


매년 악몽을 꾼다. 악몽은 매번 비슷한 내용이다. 고3으로 돌아간 내가 등장하고 당장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았으나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그 불안 때문에 꿈속의 나는 어쩔 줄 몰라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는 스스로를 참 딱하다 생각한다. 그러다 꿈속의 나는 현실의 내가 이미 입시를 끝마치고 대학을 졸업했음을 깨닫고, 알 수 없는 우월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깨어난다. 꿈에서 깨어난 현실의 나는 께름칙하다. 수능을 잘 통과했다고 해서 우월한 사람이 아님은 너무나 당연하고, 여태껏 안정적인 행복감을 느껴본 적도 없다. 꿈속의 나, 그때의 나는 단단히 속고 있는 게 틀림없다.


두 번의 수능을 쳤고, 두 번 다 망쳤다. 두 번의 수능 전부 극도의 긴장감 속에 시험을 치렀다. 두 시험 전부 전 날 잠을 자지 못했고, 심지어 첫 수능에서는 국어 시험을 치르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나머지 시험을 잘 치렀을 리가 없다. 첫 입시에 실패했을 때, 마치 모든 세상이 나를 등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도 나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한 번에 대학에 붙은 친구는 부럽다기보단 원망스러웠다.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외롭지만 누구에게도 내 상태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실패는 생각보다 내게서 너무 많은 걸 앗아갔다. 억울하고 분했다. 달리 그것을 해소할 방법이라곤, 다시 도전하여 성공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수능만 잘 치러내면, 입시에서 성공을 거두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란 믿음. 그러나 대학에 합격을 하고 나서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어렸을 적부터 삼았던 목표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어머니는 기뻐도 모자랄 판에 왜 울고 있냐며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기쁘기도 했다. 바라던 걸 얻었으니, 그리고 입시에서 해방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걸 미리 직감했던 것 같다. 잠깐의 기쁨이 평생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직감이었다.


"수능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진 않지만, 인생의 많은 것들을 결정한다." 참 이상한 위로라고 생각했기에,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수학 학원 선생님이었다. 입시 스트레스에 대해 얘기하던 와중이었는데, 아마 그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려 해 주신 말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의 위로는 오히려 더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 도대체 수능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결정한다는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중요하진 않지만 많은 것들을 결정한다는 시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내려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믿음은 사회에서도 반복된다. 복학을 할 때쯤이었을까. 오랜만에 대학 동기와 만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자리였다. 나는 당시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직접 작가가 되기는 어렵지만 작가와 수용자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희망을 품었던 때이다. 동기에게 신이 나서 얘기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동기의 말은 차가웠다. "너 그러다 인생 X 돼." 뭐가 X 된다는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가 재밌을 만한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할 것 같았다. 당시 동기는 공기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의 전공이라면 그와 유사한 루트를 타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동기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궤도를 이탈할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당연히 나아가야 하는 길이 있다고 믿고 있었을 터이다. 타인의 행복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동기에게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으나, 동기의 말을 그렇게 이해하기로 다짐하고 굳이 더 이상의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냥 웃어 보이고 말았다.


두 번째 수능을 칠 때가 떠오른다. 재수를 하면 시험을 더 잘 치러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을 투자한 만큼 긴장감도 덩달아 커지고 말았다. 당연히 주변 모든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해도 무언가 부족한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국어 시험을 치던 와중이었다. 뒤편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체절명의 인생의 관문 앞에 놓여있는 나인데, 옆에선 코를 고고 자고 있다니 도저히 시험에 집중할 수 없었다. 손을 들어 감독관에게 조치를 요청했고 곧 그 학생의 코골이는 멈췄다. 당시의 내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자면, '별 미친 X이 다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당시의 나와 내 인생을 경고했던 동기의 입장은 같을지 모르겠다. 수능에서 성공하는 길이 인생의 단 하나의 정답이라고 믿고 있었던 나는, 코를 골았던 학생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동기도 나를 미친 X이라 보았을 터이다. 물론 수능 시험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학생은 어쨌건 내가 믿고 있던 단 하나의 정답에 나만큼 목숨을 걸고 임하지는 않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어쩌면 포기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학에 들어가 다른 동기들처럼 궤도 안에서 열심히 임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외면했던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조의 상징 권력을 체화하는 과정으로써 '아비투스' 개념을 소개했다. 체화는 오인으로부터 기인한다. 한정적 생애를 살아가는 인간은 객관적으로 보이는 사회 구조가 고정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에는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꽤 성공에 가까운 일이라 평가받을지 모르나, 조선시대만 해도 '상인'은 구조의 가장 하부에 위치한 계층이었다.(사농공상) 사회의 필요, 문화적 임의성에 따라서 구조가 형성된다. 사람들은 그것이 고정적이라 교육받아왔기에,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상징적 권력의 위계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구조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또다시 변화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의 이론에서 구조란 '장(field)'이다. 장의 꼭대기에는 상징 권력을 획득한 사람들이 위치한다. 그들의 상징 권력과 장의 구조를 고정적이라 절대 불변한 것이라 오인하는 사람들은 권력을 얻기 위한 투쟁을 벌인다. 그 투쟁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감수해야 한다. 수능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좌절감에 허덕이면서 별 수 없이 다시 재수에 임하는 것처럼. 괴롭고 외로운 길이지만, 모두가 성공이라 여길만한 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두는 것처럼.


올해도 마찬가지로 꿈을 꿨다. 수능을 치르고 있는 꿈이었는데, 문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갑갑함과 조급함에 시야는 흐려졌고, 정신을 차리자 꿈에서 깨어 있었다. 부르디외의 말에 따르자면, 나의 악몽은 상징적 폭력이 남긴 트라우마다. 하나의 정답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구조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믿음과 경험이 내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내게 모진 말을 건넨 동기가 그러하듯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불수능의 기조가 유지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떤 학생은 어려웠음에도 시험을 잘 치러냈을 수도 있고, 또 누구는 생각보다 높은 난도에 평소보다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사실 이는 그리 중요치 않다. 내게는 학생들이 성적을 잘 받아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으면 하는 마음보다, 어찌됐 건 그 폭력적인 구조 안에서 마음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구조는 생각보다 객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왜곡된 믿음에 의해 그것의 형태를 더욱 공고히 다진다. 행복은 믿음에 기인한다. 객관적인 구조가 존재하리란 믿음. 믿음에 근거해 객관적 성공을 생각할 수 있다. 달리 믿어보는 건 어떨까? 코를 골아서는 안 되겠지만, 수능 시험장에서 잠을 청해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 말이다. 행복은 사회의 요구대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당장 실패라고 불리는 사실들은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입시를 치르는 학생들에게 응원이 필요할까? 긴장하지 말라는 말도, 끝까지 잘 해내라는 말도 전부 객관적 성공을 전제한 폭력일 뿐이다.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도,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셈할 수 있는 사회가 우선되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증주의와 중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