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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딴에는

이거 가져, 내 속의 절반이야.

<히카루가 죽은 여름>

by May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 따르면, '사람대접'은 그저 태어나는 것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말하듯,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행위는 '환대'다. 환대는 그저 호의를 베풀어주는 것이 아닌, 그가 머무를 사회적 장소를 마련해 주는 행위다. 장소를 마련한다는 건 나의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하고서라도 너의 몫을 챙겨주겠다는 다짐이다. 이 기적과도 같은 환대를 통과해 내는 존재만이 사회의 성원권을 얻어 내어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괴물일 경우에는 어떠한가?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존재라면?『히카루가 죽은 여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요시키의 소꿉친구 히카루는 산에서 실종된 후 '히카루의 모습을 한 무언가'로 살아 돌아온다. 요시키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히카루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히카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체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을의 뒷산에 살며 마을의 액운을 빨아들이는 존재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고, 지옥이기도 하다. 요컨대 괴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의 소망은 별 게 아니다. 그저 요시키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등하굣길을 거니는 평범한 일상, 요시키는 '괴물 히카루'의 존재가 두렵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존재를 수용한다. 그게 무엇이든 히카루의 모습을 한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에게는 인간의 개념이 유효하지 않을 터, 괴물 히카루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 같으면 눈도 깜빡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친한 친구였던 아사코까지 위협하기에 이른다. 히카루는 죽음이란 그저 형태가 바뀌는 것뿐이라며 요시키에게 항변해 보지만, 인간인 요시키에게는 충격적이기만 하다.


요시키는 자기 손으로 히카루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칼로 찔러도 히카루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히카루는 혼란스러워하는 요시키의 얼굴을 통해 죽음이 인간들로 하여금 얼마나 큰 슬픔을 자아내게 하는 것인지를 배운다. 여전히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치명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건 깨달은 것이다. 히카루는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몸 깊숙한 곳에서 자신의 힘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떼어 요시키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요시키, 이거 가져 내 속의 절반이야. 지금 뜯어냈어. 목숨의 무게라는 거 아무래도 잘 모르겠지만 이제 난 간단히 사람을 죽이지 못할 만큼 작아졌어. 나는 내가 뭔지 잘 몰라 이렇게 되기 전에는 감정도 없었던 것 같지만 있을 곳이 없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었어. 처음에는 너한테 들키면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죽이고 싶지 않더라 결국 너는 나를 받아들여 줬잖아. 그때 처음으로 내가 필요하구나 여기 있어도 되는구나 싶었어. 내게 부족했던 건 쭉 그거였구나 하고 이유가 뭐든 너는 내게 존재할 수 있는 곳이 돼 줬고 나한테는 그게 정말 중요했어.


히카루는 이제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없을뿐더러 자신을 보호하기도 어려울 만큼 약하다. 타자와의 관계를 맺기엔 비대했던 자아를 깎아내는 일, 요컨대 히카루는 요시키의 얼굴을 통해 타자의 윤리를 깨우친 것이다. 요시키의 화답은 어떠할까? 요시키는 여전히 망설인다. 언제나 그렇듯 환대는 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윤리적 불안과 맞닥뜨린다. 함께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일지만, 어떤 비극이 도래할지 모르기에 두려운 것이다.


요시키는 조건적 환대를 택한다. 마을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며 노누키인지 우누키인지는 모르겠지만, 히카루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역부족, 진실에 다가갈수록 요시키 자신과 히카루, 마을 사람들까지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을 마주한다. 괴물 히카루는 끝내 히카루의 몸을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겠다 다짐한다. 요시키를 비롯하여 학교 친구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진짜 히카루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평안한 삶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나 산으로 돌아갈 생각이거든. 요즘 너를 공격하는 건 아마 내 본성이 드러났기 때문일 거야. 내 텅 빈 부분을 채우고 싶어서. 영혼을 원하게 되는 거지. 인간은 잘 이해 못 할 거야. 난 원래 이런 존재인 것 같아. 사람도 많이 죽였고 또 죽일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죽이고 싶지 않아. 내가 산으로 돌아가면, 네가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평화로울 거야. 요괴는 사라지고 너는 히카루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거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요시키는 히카루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에, 정답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요시키는 지금의 히카루가 사람을 죽였던, 괴물이던, 신이던, 요괴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그런 진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꽁꽁 숨기고 살아온 요시키 자신도, 겉과 속이 다른 요괴와 마찬가지라며 히카루를 붙잡는다. 당신의 정체성, 조건 그리고 당신을 향한 세상의 도덕적 판단을 막론하고 그저 순수한 타자인 당신에게 내 세상의 자리를 내어주겠다는 선언. 히카루에 대한 요시키의 절대적 환대는 그렇게 완성된다.


나도 요괴야! 평범할 필요 없어. 난 진짜 나를 숨긴 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

네가 살인자라 할지라도. 난 너랑, 히카루랑 함께야! 너는 히카루 대신이 아니야. 나는 그저 네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


히카루는 타자와의 합일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축소시키고, 요시키는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다. 히카루와 요시키의 상호적 자기 포기는 타자를 자신의 세상으로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기를 내어주는 방식의 기적적인 거래는 각자의 세상으로 하여금 서로에게 성원권을 부여한다.


자기 포기의 숭고함은 인간에게 남아 있는 가장 근원적인 차원의 윤리이다. 그러나 이 기적 같은 거래가 보편으로 확장될 수 있는가는 또다른 문제다. 나의 몫을 기꺼이 내어주고서라도 당신을 들이겠다는 누군가의 다짐, 그로써 우리는 사람이 된다. 그런 우리는 우리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에게까지도 기꺼이 자리를 내어줄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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