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면 전부 해결돼

<100M>

by May

자본주의 안에서 꿈을 꾸는 일은 꽤나 가혹하다. 자라면서 마음 한편에 품은 꿈을 먹고사는 문제로 바꾸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구체적인 삶은, 결국 돈으로 환산되는 방식으로만 승인된다. 돈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공정한 평가 기준이 수반된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취미로 남기면 되겠지. 그렇게 넘겨보지만, 그것조차 버티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평가 대상이 되어버린 꿈은 결국 내 것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장'안에서 살아간다. '씬'이라는 말로 통용되기도 한다. 비슷한 꿈을 가진 이들이 얽혀 하나의 위계를 만들고, 우리는 그 꼭대기를 올려다보게 된다. 언젠가는 저 위로 올라서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에 수반되는 고통을 감수하며 애를 써보지만, 그 장에 속한 누군가의 성취는 계속해서 나의 미달을 증명한다. 내게 가장 앞줄을 차지한 이는 이슬아 작가였다. 어린 나이에 글 하나만으로 성공해 낸 사람. 나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들뜨게 만드는 사람. 그러나 꿈을 꾸는 일이 가혹하듯, 위를 바라보는 일도 좀처럼 쉽지는 않다. 나는 한동안 그의 작업물을 외면했다. 어쩔 수 없는 인정과, 어쩔 수 없는 부정 사이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끝내 그의 작업물을 읽었을 때, 차라리 말끔해졌던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면 선택지는 세 가지로 추려진다. 첫째는 꿈을 포기하는 것. 내가 위치해 있던 그 '장'의 하위에서 벗어나 다른 장에 속해버리는 방법이다. 이 선택지는 꽤나 합리적이다. 고통스럽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단념해 버릴 수 있기에, 그 반대급부로 발생하는 처절함을 내 삶에서 소거할 수 있다. 둘째는 어딘가 어정쩡한 지점에 머무르는 것이다. 포기하지도 애써 외면하지도 않고, 반쯤 붙들고 있는 상태다. 노력은 좀처럼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스스로를 좀먹는 상태다. 셋째는 그냥 전력으로 달려보는 것이다. 나를 좀먹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나까지도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그 무언가를 온몸으로 행하고 즐기며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내가 바라는 만큼 언제나 보상이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는 태도다.


이 세 번째 지점에서 <100M>는 구체적인 형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주인공 토가시는 ‘결과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이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전국 1위를 할 정도로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다. 그저 “대부분의 문제는 100m를 남들보다 빠르게 달리면 해결된다”라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빠르게 달릴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재능은 점차 빛이 바래고, 자신보다 빠른 이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결국 매년 계약 갱신을 걱정해야 하는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 버린다. 그는 결국 두 번째 지점에 머문다. 달리기 시합을 준비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전하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패배했을 때의 마음가짐'이고 '전력으로 달려도 패배할 때가 있다'며 마치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체 말하지만 사실 그건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다. 어정쩡한 위치에 놓인 자신에 대한 합리화라는 것을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코미야는 ‘도망치기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 허무에 도달한 사람’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달리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는 토가시의 말은 달리기에 대한 코미야의 열망을 깨운다. 달리기는 코미야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코미야는 토가시의 조언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달리는 방법을 배우고, 누군가를 추월하여 승리하는 경험을 맛본다. 이후 재능은 만개하고 토가시를 뛰어넘어 정상의 자리를 노리는 선수로 성장한다. 그러나 반복해서 승리하고, 기록도 세워봤지만 현실의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정상의 자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 그 시점에서 코미야는 의문을 가진다. 도대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자이츠는 이 '장'의 꼭대기에 위치한 인물.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속도로 달리는 이다. 언제나 남들보다 빠르게 달려 누가 보기엔 환희에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반복되는 이 경쟁 속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음을 깨닫는다. 한 사람이 누리는 성취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말마따니 '고작 세포 덩어리 밖에 안 되는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바로 여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카이도는 자이츠와 같은 시기에 활동을 한 탓에, 재능에도 불구하고 15년 선수 생활 내내 만년 2등에 머무른다. 그는 토가시에게 말한다. 현실로부터 도망치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면, 요컨대 당신을 지루하게 괴롭히고 있는 이 현실을 떨쳐낼 수 없다는 의미다. 토가시는 카이도의 말을 통해 전력으로 달린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한다.


남들보다 실제로 빠르게 달려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한번 빠르게 달려 보려고 전력으로 몰입했던 나의 의지 그 자체다.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끝없는 경쟁과 성취의 허무감에 빠진 코미야에게 토가시는 다시 한번 말한다. "세상엔 단순한 규칙이 있어. 100미터를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면 전부 해결돼." 같은 말이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다. 이 말은 이제 더 이상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 줄 것이라는 허망한 믿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전력을 다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유일한 구원이라는 선언과도 같다.


형태적으로 작금의 세상은 우리의 꿈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어떻게 스스로를 담아낼까 재고 따지다 보면 남는 건 상처뿐이다. 여기에 더해 오만하게 단언하자면, 세상은 본질적으로 내 뜻대로 어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 세상 안에 꿈이라는 것도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결국 내 탓을 하게 되는데, 내 탓을 하는 방법도 오묘하게 두 갈래로 나뉜다.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탓하며 채찍질하거나, 지금 이 순간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먹이며 몰입하지 못하는 나를 바로 세우려 애쓰거나. 비슷하면서도 다른지라, 후자를 말하면서도 전자의 방향으로 스스로를 소모하게 된다.


어쩌면 여전히 불완전한 말이다. 굴러 떨어질 돌이라는 걸 알고 있더라도, 다시 밀어 올려야 한다는 것. 사실 관계를 따져보자면 '대부분의 문제'들 역시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결국 우리가 한 번쯤은 선택해 보았고, 앞으로도 선택하게 될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가혹하다. 어떤 날은 외면하고, 어떤 날은 포기하고, 또 어떤 날은 어정쩡한 지점에 머무르게 된다. 승리에 취하거나, 냉소에 빠지는 건 너무 쉽다.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 전력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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