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칼립투스 월계관
꽃병에 꽂아두었던 오니소갈럼 꽃이 시들해지려 하자 아쉬운 마음에 유칼립투스와 함께 레드 배경에 놓으니 열심히 달려온 사람에게 주고 싶은 화관처럼 느껴졌다. 미리 어떤 형상을 상상하고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무심코 배치를 했는데 구체적인 모습이 뒤늦게 보이는 경우들도 꽤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남동생이 얼마전 파일을 달라고 하더니 캔버스 액자에 사진인화를 해서 보내준 적이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작업물들도 한데 모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 물론 이 브런치에 그 기초적인 공사를 하고 있는 셈이지만.
몇 년 전 신문에서 나이 50이 되어 색다른 시도를 하는 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연세대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사람의 몸을 찍은 엑스레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2006년에는 자신의 생각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2017년에 나온 <X-Ray Art>라는 작품집이다.
책 앞쪽에는 사진평론가 최건수 선생이 "겨자씨 하나에서 우주와 삶을 보는 것처럼, 작가는 소라껍질 속에서 새로운 우주를 본다. 무엇이 우주이고 무엇이 우주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주가 아닌 것이 없다. 꽃, 고기, 사람 등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감추어진 또 다른 아름다움을 통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우주를 만들고 살아간다"라며 이 작품집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대목을 읽으며, 나도 종종 내가 하는 작업들에서 그 재료들의 작은 우주를 봤노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내 작업은 냉장고 한귀퉁이에서 조리를 기다리는 식재료와 집 안의 식물들이 조명을 받으며 다른 전혀 상관없던 재료들과 함께해 추상이든 구상이든 그림 하나를 완성해가는 과정인데, 원래 있던 자리를 떠나 새로운 곳에 그들이 안착했을 때 그동안 못 보던 그 재료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기쁨들을 여러 번 맛보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나 또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우주임을 알아간다. 외부의 충격에 아프기도 하고 소소한 여러 감정들에 휩쓸려 힘들어할 때도 있지만, 그 자체로 이 지구에서 충분히 살아갈 만한 의미가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가는 걸 큰 기쁨으로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