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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림 Jan 09. 2019

13.식재료들과 꽃들의 이름을 되뇌이며

소행성  B612

ⓒmaywood

작업한 재료들을 모두 조리해서 드시는 건가요? 자주 듣는 질문이다. 브로콜리를 데쳐 초장에 찍어먹는다 해도 식구가 적어서 한끼에 1인당 4-5조각을 먹으면 많이 먹는 셈이다. 자색양파는 익히기 전에는 색감이 참 고운데, 볶은 후에는 그 생생한 빛을 잃어버린다. 그래도 작업재료로 썼던 과일들은 남기지 않고 꽤 잘 먹는 편이긴 하다. 가끔 퇴근 후 시간이 없으면 때로는 반찬을 사다 먹기도 한다. 요즘은 반찬 조달을 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라 돌아가며 맛본다. 시행착오를 겪을 때도 있지만 나에게는 천군만마나 마찬가지이다.      


어디에 배치해도 잘 어우러지는 재료인 파스타면은 모양따라 제각기 파르팔레, 푸실리, 에그페투치네, 타그탈리아텔레, 시금치페투치니, 라자냐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파스타를 해먹을 때는 평범한 면을 더 자주 쓰게 된다. 얼마 전에는 오징어먹물 파스타면을 할인하길래 사봤는데, 아주 고소하고 맛나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도 집에서 스파게티를 만들 때 써보지는 못했다.      


봄과 여름에 자주 활용한 꽃과 식물들도 마찬가지이다. 클래식음악도 그렇고 식물이름도 그렇고, 참 이름 외우는 데는 재주가 없나보다 하며 낙심하는데, 실제로 이름을 알아가며 만져보고 냄새 맡고 하면서 점점 친숙해지고 있다. 세상에 내가 이름을 몰라주었던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놀래는 중이다.      


이번 작품은 캔디비트 조각 주변으로 자석에 이끌리듯 브로콜리와 컬러수제비 몇 개가 에워싸고 있다. 제목은 ‘소행성 B612호’. 늘 화사하고 밝은 작품만 하라는 법은 없다. 채도가 낮은 작업물들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단순한 색상 작업들을 떠올리자면, 아직 싣지는 못했지만 흑백 식탁매트를 배경으로 양파만 동그랗게 잘라서 배치한 적이 있다. 제목은 ‘양파, 흑백 몬드리안을 만나다’로 지었었다.     


문득 다시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두부, 콩나물, 어묵 등 너무나 익숙해서 존재감을 못 느끼는 반찬재료들로 작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미적인 요소들이 좀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걸 채울 수 있는 길이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들과의 협업에 곧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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