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기하학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마이 그린 테이블’ 작업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은 우연에 의해 굴러가는 거라며 이 작업을 내가 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우연이자 필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작업 횟수를 거듭할수록 시장과 마트로 식재료들을 살펴보러 갈 때의 내 눈빛은 싸움터에서 전리품을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는 전사의 모습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올리면서부터는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면서 내 관심과 취향을 덜 신경쓰게 되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내가 힘을 주어 계산해 작업한 결과물보다 언제 끝났나 싶게 무심코 즉흥적으로 배치한 그림이 때로는 반응이 더 좋더라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작품이지만 그걸 대하는 이들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꽤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 풍경은 참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자두 기하학>은 집에 재료라고는 딸랑 자두밖에 없고 배경으로 할 만한 게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차에, 포장지 모음이라며 키티버니포니에서 만든 종이를 사둔 것이 기억났다. 그중 자두 색감과 잘 어울릴만한 배경을 골라 배치해보았다. 정말 자두는 그냥 거들었을 뿐.
소노 아야코는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에세이집에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미의식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기 전까지 막연히 흘러가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문득 이런 큰 인생의 흐름 속에서 부엌 한켠을 빌려 이 소박한 작업을 하면서 어깨에 힘까지 들어가는 건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 그린 테이블’을 하고 있는 내 삶의 미의식은 뭘까.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들의,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평범함에서 낯섦과 함께 정겨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 앞으로 좀더 많이 이 작업을 해나가야 간신히 알 것 같은 인생의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