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 그늘 아래서
“엄마, 언제 숙소로 돌아가?”
“왜? 다리 아프니?”
“그게 아니라, 어서 침대에서 게임하고 싶어서. 역시 호텔 방이 최고야. 와이파이도 잘 터지고.”
몇 년 전 딸아이와 단둘이 런던과 파리를 다녀오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직접 예약 등을 하며 애를 써왔던 터였다. 드디어 런던을 거쳐 파리에 도착해 새로운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오르세미술관을 찾았던 때였다. 딸아이에게 ‘넌 복받은 줄 알아. 이렇게 이른 나이에 유럽을 다녀올 수 있다니. 엄마 때는 꿈도 못 꾸던 일이라고.’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눈을 흘겼다. 내가 이 두 도시를 왜 왔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괜한 계획을 세웠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짠 여행도 아니었다. 흔히 본전을 건지기 위해 힘들게 발품 파는 일은 내 체력에 맞지 않기도 하고, 아이와 단둘이 와서 보호자가 아프기라도 하면 안 될 것같아 엄청 몸을 사리며 다니는 중이었다.
너무 방대해 엄두가 안 나는 루브르박물관보다는 런던의 테이트모던처럼 원래 공간을 변형시켜 작품들을 효율적이고 분위기있게 배치한 오르세미술관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특히 고흐의 방에서 본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 푸른 빛 색조는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른다.
어서 돌아가고 싶어하는 딸과 함께 미술관 기프트샵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에코백, 엽서, 연필 등등 늘 사고 싶은 것은 많지만, 오르세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으로 꾸며진 만화경을 사기로 했다. 눈에 가까이 대고 안을 들여다보자 색색가지 화려한 꽃무늬가 여러 모습으로 펼쳐졌다. 소금 알갱이 같기도 하고 눈송이 같기도 하고.
딸아이는 아마 지금은 과연 그런 곳에 다녀오기는 한 건가,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씩 책상서랍 속에 놓아둔 만화경을 보며 어느 미술관에서 샀는지 물어볼 때가 있다. 어제도 우연히 그 만화경을 꺼내어 나더러 한번 들여다보라고 하면서, 내 작업들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엄마표 만화경을 만들어보란다.
내 작업은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하는 편이다. 특히 이번 우물가를 표현한 작품은 회화적이기까지 하다. 딸의 조언을 받아들여 언젠가는 만화경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보리라. 오랜 시간 후 딸의 기억 속에 또 남게 될 그 만화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