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이라는 단어의 부피
견디는 것에 대한 이야기 ep.03
이준의 퇴사 후 약 4개월 동안 그 자리는 채워지고 비워지길 계속 반복했다. 이렇게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에서 약 10명 남짓한 인원들의 입사와 퇴사가 이토록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짐짓 놀랐다. 하지만 또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이준은 직무만 디자이너였지 실상 모든 잡무와 막노동 수준의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해왔으니, 그런 자리를 누군가 메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메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딱 최저시급에 걸치는 월급을 받아가며,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10만 원의 식대와 아무런 수당도 없이 야근과 주말출근까지 해야 하는 회사의 팍팍한 근무조건에 그만뒀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회사는 근로계약서를 쓸 때 그런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지키지도 않을 허무맹랑한 약속들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일단 저희 회사는 야근이 거의 없어요. 해도 1년에 한두 번쯤? 그리고 채용공고에서 아마 보셨을 것 같은데, 일이 없는 시기에는 월에 한 번씩 주 4회 근무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팀원들 재정비차원에서라고 해둘게요."
대표가 자랑스레 그런 말들을 할 때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면접자의 이력서에 무언가 알 수도 없는 글씨를 끄적였다.
결국 마지막까지 이준의 공석이 채워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나도 이내 퇴사를 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짧은 결말이 정해져 있는 직장생활이었다. 나는 최근 2년 동안 한 회사에서 거의 6개월 이상의 근무를 해본 적이 없었고, 마치 노련한 선수가 허들경기를 하듯 반짝-하고 단기간의 업무 성과를 낸 후에는 어김없이 허무하게 퇴사를 선택했다. 그러면 회사는 나를 다시 붙잡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네가 요구했었던 원래 연봉과 이번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겠노라고. 나는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회사까지 모두 싫다고 답했다.
"네가 진짜 배가 불렀구나? 회사가 다 거기서 거기지. 이번엔 또 왜?"
나와 다섯 살 터울의 오빠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 세상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너 때문에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매번 나를 나무랐다. 그리고 걱정했다. 가끔은 이야기의 끝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제이야, 우리는 그냥 다 똑같은 평범한 인생들이다. 내 존재는 막 특별할 거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아. 그냥 다 고만고만한 월급 받고 일하면서 회사 욕하고 다시 월급 받고 그렇게 고만고만하게들 산다. 그게 나쁜 게 아니라 원래 인생이, 세상이 그런 거야."
오빠는 나와 직장 이야기를 할 때면, 늘 고만고만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나는 언제나 그 '고만고만'이라는 단어가 가진 부피가 궁금했다. 나의 '고만고만'과 오빠의 '고만고만'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격차가 있는 걸까. 세상이 정해놓은 고만고만한 인생에 한참이나 뒤처진 내 인생을 오빠가 알기나 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지금 내 인생의 모든 걸 말해줄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나의 한 달을, 나의 한 계절을 오빠에게 이야기해 봤자 1년 아니 10년 동안 나의 삶이,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부서지고 금이 갔는지를 오빠는 알 수 없을 테니까.
처음 월세방 구하는 일부터 빚지며 시작한 나로서는 아직도 주린 배를 근근이 채우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회사의 그런 방식이 싫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나오니까 이번에는 들어줄게-라는 그런 방식의 연봉인상이 어딘가 늘 불쾌했고,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중요했지만 그런 식으로 툭 던지는 돈이라는 목줄에 쉽게 내 목을 내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가진 것도 없는 놈이 자존심만 살았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나와 너무 딱 맞는 말이었다. 나는 한낱 코딱지만 한 회사일지라도 일개미가 아닌 파트너로 인정받고 싶었고, 존중받고 싶었다. 그런 회사가 존재하기를 가슴 한편에 희망하며 찾아 헤맸지만 이제는 결코(가슴에 맹세코!) 그런 회사는 없다는 걸 알기에, 정말 너무 늦게서야 뼈저리게 깨달았기에 단기간의 근무와 성과, 퇴사, 휴식을 반복하며 지내고 있을 뿐이다.
2년 전 이직을 하며 자리를 잡게 된 지방의 이 작은 소도시에서 잦은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나는 그야말로 녹초가 되었다. 많은 회사들이 그렇겠지만, 일의 기본적인 루틴도, 최소한의 마감시간도 없이 진행되는 마구잡이식 업무 환경과 젊은 층이 없어 채워지지 않는 고질적인 인력난 때문에 모든 일들을 매번 너무나도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게다가 하나를 잘하면 둘을 시키고 싶어 하는 게 회사였고, 둘을 잘 해내면 당연하다는 듯 셋-넷을 바라며 나중에는 아예 인건비 절감을 대놓고 바라는 게 대표라는 인물들이었다. 그걸 해내지 않으면, 나에게 주어진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모든 게 핑계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며 내가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렸다. 에너지만 소진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 사람에 대한 애정 따위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일과 사람에 소진되다 보니 엄마를 상실하고 줄곧 부유해 오던 나의 삶이 곧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것처럼 위태로워졌다. 나는 그냥 살아 있으니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몹시도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