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만한 것과 참을 수 없는 것의 경계선

견디는 것에 대한 이야기 ep.02

by 조수연

“소나무의 열매라면 솔방울인 건데, 그럼 솔방울의 껍질만 사용한다는 건가요?”

“네, 소나무 껍질은 송진 때문에 사용이 어려워서 소나무 계열의 열매껍질만을 쓴대요.”

“솔방울의 껍질만 쓴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돼서요. 솔방울이면 솔방울이지 솔방울의 껍질만 쓴다는 게 무슨 말이죠?”

“음...”


내가 생각에 잠긴 채 답을 찾으며 어버버 하는 동안 그는 이미 내게는 답이 없다는 판단을 끝내고 연구소와 직접 통화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다니는 작은 중소기업의 대표인 그는 굉장히 칼날같이 예리한 신중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득과 실을 빠르게 판단해서 실이 되는 부분을 한 번에 도려내는 능력이 있었다. 손익계산에 철저해서 무언가를 절대 쉽게 내어주는 법이 없는 그를 보면서 나는 감탄과 동조 그리고 어딘가 거북한 기시감을 매번 반복해서 느꼈다. 대표로서의 의무와 역할이겠거니 하며 때로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또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를 볼 때는 극명한 거부감으로 고개가 저어졌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됐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우드 필라멘트를 만드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웠다. 우선 3D 필라멘트를 만드는 국내 제조사가 거의 없었을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중국산 저가 공세에 밀려 대부분 근근이 영업을 이어가는 영세한 규모의 공장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번 클라이언트는 51%의 목재 함유량을 원했다. 10% 안팎의 목재 함유량이 최대인 현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의 수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생각의 꼬리물기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정안 휴게소에 도착해 있었다. 날이 무척 더웠는데도 사람들은 우르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다들 먹을거리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입을 우물거리며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자다 깨서 입안이 까슬했지만, 무언가 좀 먹고 싶었다. 단맛이 입안의 텁텁함을 가셔줄 것 같았기 때문에 버스에 오르기 전 편의점에서 사두었던 크래커 봉지를 뜯었다. 보지 않은 카톡과 업무 메신저가 쌓여있었고, 하나씩 해치우듯 차례차례 확인하는 동안 또 업무 메신저가 울렸다.


이준 -박람회 물품 상차 완료했습니다.


이준이 입사한 지도 벌써 한 달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매사에 성실했고, 모든 말투와 행동에 자신의 불편까지 감수한 배려가 스며있었다. 가끔은 너무 긍정적이어서 뒷일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는 그냥 한 마디로 착한 사람이었다. 묵묵하고, 배려심이 많아서 아주 깊게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지 않으면, 한편에 무르고 여린 구석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런 사람. 그는 한 달 반 만에 벌써 퇴사를 앞두고 있었다.


어느 곳을 가나 퇴사의 패턴은 비슷했다. 한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혹은 적응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떠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끝에 가슬거리는 티끌 같은 그 무언가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절대적 수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오랜 기간 여러 번의 퇴사를 반복하며 중소기업을 전전해온 나로서는 경험이 말해주는 수치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딘가 불합리한 중소기업의 구조를 참지 못해 금세 떠났고, 또 가까운 동료가 과중한 업무와 반복되는 야근을 오랜 기간 견디다 떠났고, 나 역시 참을 만한 분노와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떠나고 머무는 일을 반복해 왔으니까.


2박 3일간의 박람회를 마치고 돌아온 첫 출근 날, 박 주임에게 그가 마지막 날까지 야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준이 입사했을 무렵 회사는 전기 안전장치를 공급하는 꽤나 이름 있는 중견기업의 디오라마 설치 작업을 맡게 되었었는데 그 일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프로젝트의 규모에 비해 투입 인원은 현저히 부족했고, 대표의 과한 욕심에 비해 회사의 능력은 너무 모자랐다. 수당 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에 지친 담당자들이 고개를 저으며 질렸다는 듯 회사를 떠났고, 하필 그 무렵에 이준이 입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었다. 신입인 이준이 맡을만한 프로젝트는 절대 아니었지만,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아마 대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박 주임의 말에 따르면 결국 이준은 회사와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출장지에서 그야말로 온몸으로 헤딩해 가며 어찌어찌 디오라마 설치작업을 겨우 끝내고서야 퇴사가 마무리된 것이었다. 내가 봐도 최악의 퇴사였지만,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이준 혼자 그 프로젝트를 끝내기에는 너무 무리가 아니냐는 내 말에 그는 답했었다.


"어차피 퇴사가 결정된 사람이 업무 부담을 안고 가는 게 낫죠. 그 프로젝트 때문에 담당자 두 명이 퇴사를 했고, 퇴사 이슈는 이제 더 이상 생기면 안 되니까요. 이준 사원님에게는 제가 따로 수고비를 주든 식사를 같이 하든 보상할 테니까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세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담당자들이 순전히 그 프로젝트 때문에 떠난 것만은 아니었다. 수당이 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에 대해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회사에 질렸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예전이었다면 나도 지지않고 곧이곧대로 이 사실을 말했겠지만, 나는 이제 어느덧 중소기업 8년차에 접어든, 직장생활의 모든 불합리함에 지친 일개미일 뿐이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에 느끼는 분노조차 희미해진지 오래된 일개미. 나는 그냥 그 다운 답변이라 생각했고, 대화를 마친 후 엘리베이터를 타며 어쩐지 울렁이는 속을 달래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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