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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Feb 05. 2021

반쪽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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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칼바람이 심장을 치는 느낌이라 오늘따라 출근길이 유난히 괴롭다. 추억 속 낯설었던 러시아의 냉기보다 현실의 칼바람이 더 춥게 느껴진다. 출근길 지나치는 카페는 아마도 내가 가장 자주 들르는 장소일 것이다. 커피를 한잔 사야겠다. 잠시나마 걸음의 목적이 출근이 아니라 커피가 되니 약간 발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딸랑.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인사를 건네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없다. 계산대에서 어서 오세요를 말해주시던 분들은 다들 분주하게 음료를 제조하고 있다. 잠시 둘러보다 키오스크(무인 계산기)를 발견했다. 어, 이제 주문 여기서 해야 하는구나. 머쓱해져서 조용히 스크린을 터치한다. 


커피를 받아 들고 곧장 출근을 했다. 다들 바쁘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모여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은 많이 없다. 빈자리가 보이고 겨우 얼굴을 본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뒤돌아보면 퇴근이다. 바쁜 하루였다. 어떻게 보냈는지 잘 모르겠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루에 나누는 대화라고는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밖에 없는 동료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함께 있으면서 함께 있는 게 아니구나. 


오전의 칼바람과 밤의 칼바람은 또 다르다. 롱 패딩을 부여잡고 집으로 향하는 길. 이번에는 카페가 아니라 떡볶이 집이 나를 끌어당긴다. 떡볶이 사가야지. 오늘은 목요일이니까 떡볶이를 먹어야지. 아무 말이나 해본다. 

안녕하세요.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조금은 무섭다. 계산대는 데자뷔처럼 비어있고 옆에는 키오스크(무인 계산기)가 메뉴를 보여주고 있다. 한 공간에 떡볶이를 먹는 손님들, 주문하는 나, 요리를 하는 손님들이 각각의 장면으로 뚝뚝 떨어져서 재생된다. 이번엔 덜 머쓱하게 주문하고 앉아서 떡볶이를 기다린다. 

딸랑. 안녕하세요. 다른 손님이 들어온다. 여전히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머쓱하게 기계로 다가서는 모습이 어쩐지 내 모습 같다. 


포장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떡볶이를 받아 들고 집에 가는 길,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집 근처에 있는 다이소가 리모델링 후 무인 계산대가 주욱 들어선 걸 보고 느꼈던 기분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을 이런 식으로 실감하는 것이 새삼스럽다. 오늘은 유난히 돌아오지 않는 반쪽 인사가 실감 나는 날이다. 


아, 편의점도 들렀다 가야지.

종량제 봉투를 사야 한다는 메모가 생각나서 편의점 문을 밀어 연다. 딸랑. 안녕하세요.

돌아오는 인사를 기대하지 않았나 보다. 어서 오세요 하는 상냥한 인사에 되려 깜짝 놀랐다. 


아니, 매장마다 카운터에 사람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니까? 하는 날이 오려나 하는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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