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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Dec 16. 2020

브로드웨이의 팁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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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저녁 7시의 브로드웨이는 각종 공연 홍보물로 눈부시게 반짝이고,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Do you need a ticket? 

공연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몇몇의 사람들이 손에 티켓을 쥐고 묻는다.

금방 머물고 떠나야 하는 여행객인 나는 시간이 혹시 안 맞을까 두려워 사전 예약을 하고 왔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에서는 상시 공연이 열리기 때문에 빈 좌석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로터리(당첨 좌석)이나, 브로드웨이 위크(week) 1+1 티켓 등 가격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그래서 티켓이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Wicked)



‘ 잘 만든 공연 한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의 고향이라는 미국에서, 친절과 행동을 팁(Tip)으로 보상받는 이 나라에서  공연장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남은 티켓 파는 사람’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티켓박스로 향하는 정문에는 그다지 깔끔하지 못한 차림의 홈리스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면서 Thank you라고 적힌 팁박스를 손에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옆문으로 입장을 한다. 


나는 인터넷으로 티켓을 예매했기 때문에 별도의 티켓 교환 없이 QR코드로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공연 시작 전 화장실을 들렀다. 생각보다 줄이 길지 않아 다행이었다. 손을 씻고 핸드타월이나 드라이어를 찾는데 두리번거리던 내가 본 것은  휴지걸이나 드라이어가 아니라  ‘ 핸드타월 건네주는 사람’으로 역할을 하는 극장 직원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옆에는 ‘팁 박스’가 있었다.

오 마이 갓 

사실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면대면 돈 이야기가 그리 썩 편하지 않은 한국의 정서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처음으로 실감했기 때문일까

나는 이상하게도 핸드타월을 받아 Thank you라고 인사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찾고 돈을 꺼내 팁을 주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한 테이블의 주문부터 계산까지 책임지는 미국의 서버(Server) 시스템을 생각해보면 식당에서의 팁 문화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계산을 하면서 그 테이블에 팁을 두고 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는 아니었다. 

팁을 주기 위해 화장실에서도 지갑을 꺼내야 하나? 꼭 화장실에서 까지 저렇게 해야 할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 통을 꽉 채우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날 나는 지갑을 안 들고 와서 현금이 하나도 없었다. 안 준 게 아니라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민은 필요가 없었다. 물론 모든 이가 팁을 다 주는 것이 아니었고 그냥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한번 더 뒤를 돌아보고 화장실을 나섰다.

공연장 문으로 들어가니 직원분들이 통로를 돌아다니며 좌석을 찾아주신다. 

2층까지 좌석이 있다 보니 아마 자리를 잘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겠지. 그들에게도 팁을 줘야 할까?

이러다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만나도 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별 생각을 다한 게 우스워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아 입장할 때 받은 플레이빌을 살펴본다.

뮤지컬 관련해서 내가 구입한 MD가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빌(playbill)은 말 그대로 광고 책자다.

뮤지컬뿐만 아니라 다른 공연, 전자기기 등 다양한 광고로 가득 차있는 책자를 보면서 위키드는 유명한 공연이니 여기에 광고하는 것도  비싸겠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 그만을 속으로 다섯 번 정도 외치고 나서야 생각의 고리를 끊고 공연을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공연을 볼 때 음악, 배우, 분장, 의상, 춤, 스토리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의 협업이 이루어져야만 하나의 공연이 가능하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잘 된 공연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페이(Pay)를 지불할 수 있냐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생각을 해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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