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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Aug 25. 2021

저 학원 그만다니려고요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30

학원 강사로 일하면 운명적인 만남과 필연적인 헤어짐을 겪게 된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은 자라기 때문이다. 적응할 듯 못하는 시원섭섭한 시즌이 다가왔다. 바로 중3들의 고등학교 진학 시즌. 아직 조금 이르긴 하지만 중3 2학기 내신은 스스로 해보겠다며 하산 의지를 밝힌 S를 보며 괜히 기분이 묘했다.


S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초임일 때, 그 아이가 학원에 막 들어왔을 때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S는 형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까불어 대는 장난꾸러기였다. S는 그때부터 중3인 지금까지 쭉 내가 가르쳐 왔다. 모든 내신시험을 나와 함께 대비했으니 우수한 영어 내신 성적에 내 지분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게으름 피울 때는 채찍질도 하고 잔소리도 하고, 좋은 성적을 받으면 박수도 쳐주면서 시간을 이만큼이나 보냈다. 중학교 내내 내신 성적은 거의 100점을 받아왔던 S에게는 습관처럼 '더 열심히 해서 얼른 하산해야지'를 말했던 것 같은데 쭈뼛거리며 다가와서 이번 달까지만 수업하고 스스로 해보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언젠가 오겠지 하는 그 순간이 왔다.   





고등학교는 자사고로 가겠다고 한다. 기숙사가 있는 학교라서 아마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이 동네를 떠날 계획이다. 고등학교 3년은 쏜살 같이 흘러가서 금세 졸업을 하겠지. 지금 고등학생 아이들도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곧 고3이라서 하루하루 시들어 가는 걸 보면 틀림없이 그럴 거다. 아이들은 자라면 떠난다. 내가 낳아 기른 아이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이상하네 뭐야 했다가 그래도 일주일에 세 번씩 5년을 보던 사인데 아쉬운 게 당연하다고 스스로에게 설명도 해본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보냈는데 그중 특히 S와의 헤어짐이 조금 더 아쉬운 이유는 뭘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학생들을 똑같이 대하려고 그렇게나 노력을 해왔는데 역시나 마음을 조금 더 준 것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S의 퇴원이 아쉽지 않다.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기 때문이다. 천방지축 장난꾸러기를 바로잡아 숙제하는 습관을 만들고 중학교 내내 내신 100점을 기본값으로 여기도록 세뇌(?) 했다. 지금 당장 고등 모의고사를 쳐도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오니 3년 동안 하던 만큼만 공부하면 수능도 크게 문제없을 거다.


놀러 올게요 쌤, 하는 말에 중간고사 끝나고도 놀러 오고 고등학교 입학 전에도 오라고 했다. 고1 3월 모의고사 치면 성적표 사진 찍어 보내라고 엄포도 놓았다. 아직 지켜보고 싶은 장면들이 많지만 헤어짐이 있어야 또 다음 장면이 있겠지 여겨야겠다. 


9월이 온다. 강사의 하반기는 이제 시작이다. 누군가에게는 2021년이 3~4개월밖에 안 남았겠지만 우리는 이제 2학기가 시작이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또 오겠지.


살다보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까 늘 착하게 살자우리 

안녕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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