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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Aug 08. 2021

고등학교 입학 전에 수포자라니?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29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나는 문과생이었고 '수포자' '영포자'라는 말이 한참 유행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수학 점수 평균이 30점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선생님들이 나를 놀리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10년 전 대화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 보니 꽤 충격적이었나 보다.


" 고등학교 수학 내신 평균은 30점 대야 "

" 에이 선생님 어떻게 평균이 30이에요, 그건 그냥 공부 안 한 거 아니에요?"


그런 건방진 대사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은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는 수포자는 아니었지만 수학에 대한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수1 밖에 안 하는데 뭐 할게 많냐는 이과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며 수능을 끝냈다. 


그게 끝이었다. 그 이후 10년간 나는 그렇게 힘들게 배운 미지수 x와 log, 행렬, 함수, 삼각비 뭐하나 써먹을 일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해보겠다고 책을 펼치니 대출 비용 계산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고등학교 졸업 9년 만에 처음으로 x를 그려봤다. 작년 10월에 있었던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고 나서 학생들과 수다를 떨던 중 9년 만에 x를 그려봤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2학기 기말을 앞둔 중3들이 한숨을 푹푹 내쉰다. 


" 선생님 저는 수포자예요 "

" 넌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안 했는데 무슨 벌써 수포자야? "


깜짝 놀라 뭘 벌써 포기하냐고 물었더니 말한다. 


" 수학학원 선생님이요 고등학교 가면 수학 평균이 30점이래요, 고등 꺼 선행하는데 하나도 모르겠어요 "


중3들은 11월이면 기말고사까지 모두 끝난다. 고등학교 입학까지 남은 시간은 12월부터 약 3달. 

10년 전에도 수학 평균은 30점이었는데 지금도 30점인가 보다. 선생님들이 겁을 엄청 주는데 내용을 하나도 모르겠단다. 나름 성적에 욕심이 있는 학생인데 저런 소리를 하니 마음이 안 좋다. 


아이들은 한동안 함수 배워서 어디다 쓰냐는 둥, 살면서 방정식 어디다가 쓰냐는 둥 불만을 한참 토로한다. 수학이 힘든 학생들 이야기 한참 듣다 보면 어느덧 영어는 비교적 유용한 과목이 되어있다.


그럼 그럼, 영어가 낫긴 하지. 영어강사가 영어 과목 편애하는 건 당연한 거다.






수학강사 친구한테 메시지를 보내봤다. 수학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들이 너무 안타깝다. 혹시 아이들이 대학 가는데 수학이 왜 필요하냐고 물으면 넌 뭐라고 대답하니 하고 물었더니 


[ 그건 입시제도 만드는 사람들이 협의할 사항이지, 학생과 선생님이 협의할 내용이 아니다 ]


정나미 없는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어이가 없지만 맞는 말이다. 학생한테 수학을 해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어차피 중요하지 않을 거다. 이유를 알든 모르든 하기 힘들 테니까. 


현 입시제도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이유를 알든 모르든 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시 과목에 왜 영어가 있는지, 한국사가 있는지 아무도 따지고 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 시험 제도에 응시해서 합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설명은 해줄 수 있지 않나. 허참 


가만 생각해봐도 국어나 영어에 비해서 아이들을 이해시키기 어려울 거 같긴 하다. 수학을 통해 공간지각력, 계산력, 직관력, 추론력을 기르기 위해서란다 라고 설명해봤자 몇 명이나 납득할까.


고등학교 입학도 전에 수포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이는 중3들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안 좋았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뿐이다.  내가 수학을 어떻게 해줄 순 없으니 영포자라도 안되게 해야겠다. 


이럴 때가 아니다. 그만 이야기하고 단어 외우자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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