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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Nov 20. 2022

일요일? 보강하는 날 아니에요?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43


목요일, 수능 잘 쳤나 궁금하고 시험지는 언제 올라오나 궁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오후 5시 30분, 수업 들어가기 직전에 전화가 울린다. 방금 막 수능 치고 나온 고3 학생이 습관적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 여보세요? T야!!! 너무 고생했어!! 시험 어땠어! "

" 쌤!! 시험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답은 잘 못 적어 온 거 같아요!! 모르겠어요 근데 일단 끝났어요! "


일단 모르겠고 끝났다는 목소리에 어쩐지 기쁨이 가득하다. 유명한 지각쟁이라 수능날은 지각해서 경찰차 타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나 보다. 정말 끝났네, 너무 고생했다.



고3은 고등학교 졸업할 준비를 하는데, 모두가 끝난 것은 아니다. 단과 고3 선생님들이야 수능이 끝난 한 주가 휴가 기간이라지만 동네 학원 강사에겐 그런 거 없다. 보통 작은 동네 학원에서 중고등 수업을 하는 경우는 시험기간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중3이 2학기 이른 기말고사를 끝냈고, 고3이 수능을 끝냈다. 이제 중학교 1, 2학년 고등학교 1, 2학년들은 기말고사 기간이 시작된다. 중3들은 예비고 과정 시작해야 하니 말 그대로 피크다.


선생님은 왜 시험 이야기만 하냐며 1학기를 끝내고도 별생각 없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다. 2학기 중간고사 점수에 충격을 받은 학생들은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는 학생들을 만나면 신이 난다. 



극악무도한 학사 일정으로 11월 말에 기말고사를 보는 고등학교가 있다. 평소 시험 범위가 많기로 소문난 학교라 시험대비를 훨씬 일찍 시작했는데도 벌써 시험이 코앞이다. 토요일 정규수업을 마치고 달력을 보더니 피로에 찌든 얼굴로 말한다 


" 내일 일요일이에요? 선생님?"

" 응, 우리는 보강해야지"

" 아, 우리는 보강하는 날이죠 참"


1학기까지만 해도 일요일에 보강을 왜 해야 하나요부터 수면부족으로 먼저 쓰러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던 학생이 한 번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미묘한 부분에서 변화를 느끼고 '어?' 싶을 때가 타이밍이다


" 오, 진정한 고등학생으로 거듭날 준비가 되었는데?"

"1학기 내신 보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 대답이 일단 맘에 들어, 그런 기념으로 숙제는 여기에서 여기까지"

"...?"


벙찐 얼굴을 모른척하고 프린트를 책 속에 끼워 넣는 찰나에도 우리는 다 해낼 수 있다며 주문을 외운다. 이제야 험난한 고등학교 생활에 진지하게 임할 자세가 되었구나. 장하다.



" 쌤, 주말에 보강해요?" H가 슬금 다가오며 말한다 

" 응 해야지?" 나는 코로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한 이야기 하냐는 얼굴로 대답한다.  

" 쌤도 주말에 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S가 씨알도 안 먹힐 말을 지치지도 않고 던진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H가 거든다.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랠리가 이어진다. 고등학생쯤 되면 말도 잘해서 요령껏 제압할 필요가 있다. 나는 조용히 달력 옆에 가서 선다. 고개짓 한 번에 아이들의 시선이 따라 움직인다.  학생들도 헛웃음을 흘리며 수긍한다. 기말고사 2주 전, 긴말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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