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쌤 Apr 16. 2024

선생님, 수행평가 망쳤어요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48

동네 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시작한 나는 주로 초중학생들을 많이 가르쳤다. 한 곳에서 이동 없이 8년 정도 있다 보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가 훌쩍 커서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수능을 치고 졸업해서 어른이 되었다며 으스대는 귀여운 모습도 볼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기른 자식 같은 학생들이 많이 생겼고, 학령기 특징을 몸으로 부딪혀 익힐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초등 수업을 점차 줄여가고 있는 요즘, 중고등 수업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특징들을 알아간다. 바로 고등학생들의 멘털상태. 오늘의 이야기는 가련한 K-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띠링, 알람이 울린다 

눈물로 가득한 문자, ㅠㅠㅠㅠ선생님 수행 망쳤어요 


K-고등학생들은 3월 입학하자마자 모의고사, 수행평가, 중간고사, 수행평가, 모의고사, 기말고사의 사이클을 경험하게 된다. 놀랍게도 이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1학기가 끝이 난다. 어른들이 보기에 6개월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나누고, 각각 수행평가와 지필고사의 비중대로 점수 환산을 하는 이 작업은 꽤나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잠깐만 생각해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아이들이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기부는 진로에 따라 일관적이게 쓰는 게 좋다는데, 아직 진로도 없는데 뭘 쓰라는 걸까? 수행평가도 자기 진로탐구를 보여줄 수 있는 도서를 골라서 리포트를 쓰고, 진로에 대한 흥미를 반영한 보고서를 써오란다. 아니, 진로를 못 정했다니까?!


꿈과 직업을 동일시하고 있는 아이들의 현 상태도 문제지만, 흥미 탐색에 대한 기회 자체도 너무 적다. 그리고는 마치 지금 작성하는 너의 수시용 생기부가 너의 인생에 아주 막대한 영향을 줄 것처럼 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은 겁을 먹어버린다. 


'선생님 수행 망쳤어요 어떡해요? 듣기는 10프로 들어가고, 단어도 10프로 들어간데요' 

' 아직 중간 안쳤는데도 이번 1학기 내신 벌써 망한 것 같아요'


속된 말로 두부멘탈을 가진 아이들은 너무 많다. 문제가 생기면 부딪히기보다는 피하기를 선택하고, 부딪히고 나서 넘어지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처럼 일단 울고 보는 아이들. 어떡해요? 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고 다음 공부할 시간을 다 날려버리는 경우도 너무 많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으면 빨리 잊어버려, 다음 거 하러 가자'

아무렇지 않게 말했더니 아이들의 공격(?) 이 돌아온다.


' 선생님 T죠! 어떻게 그렇게 말하세요 ㅠㅠㅠㅠㅠㅠㅠ'

' T든 아니든 빨리 정신 차리고 다음 거 하러 가, 울지 마 눈물 때문에 문제 안 보여'


말하면서도 나도 마음이 아픈데, 아이들은 쉽게 믿지 않는다. 이게 쌤이 너를 응원하는 방식이란다. 





'저 이번에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안 한 애들이 저보다 점수 잘 나오는 것 같아요'


나는 종종 수업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빨리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다면 이 이야기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최선을 다하고 나오는 결과가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어떤 일에 자기가 투입한 input 만큼 output 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성적이나 인간관계를 마치 게임처럼 자기가 3을 투자했으면 3이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아이들이 그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가능한 빨리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번외)


단어를 외웠는데도 안 외워져요, 응 그럼 가서 5번 더 써, 5번 더 썼어요 그래도 안 외워져요, 그럼 가서 10번 더 써, 쟤는 3번만 해도 외웠어요, 당연하지 사람마다 필요한 암기에 필요한 횟수는 다른 법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이별 또한 나의 일이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