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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쌤 May 24. 2024

학원 꼭 보내야 할까요?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49


오늘의 이야기는 질풍노도의 중3 하위권반.

레벨별 수업을 해본 모든 선생님들은 레벨과 태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화는 위험한 것이고 그것을 숨기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중학교 3학년 기초반. 쉽게 말해 학교 교과서 기준으로도 모르는 단어가 아직 너무 많거나, 영어공부를 초등 6학년쯤 시작한 친구들. 단어 외우는 건 너무 하기 싫고 지각도 너무 잦다. 책을 안 가져오는 건 옵션이고 숙제는 11명 중 4명 정도 해오는 것이 현실이다. 


인문계고를 갈까, 전문계를 갈까 누군가에겐 선택의 이야기인 것들도 어느 학생들에게는 선택이 아니다. 

" 선생님, OO 고등학교 가려면 내신 어느 정도 돼야 해요?"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학생들은 중학교 내신 성적으로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 입학 지망생 수가 많거나 내신 점수가 높은 학생들이 몰리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아 2학년 때 공부 좀 할걸"

조금 늦은 후회를 하고, 3학년 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내 위로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 또 풀이 죽어버린다. 학생들의 감정 널뛰기를 따라가기에는 나는 반응 속도가 좀 느리다.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지난 시간에 아이들이 좋아하던 밈을 하나 던져주자 다시 까르르 웃으며 책을 편다. 가내신이 나온 뒤숭숭한 날 오후 드디어 책을 펼치고 수업을 시작해도 되나 하는 순간 S가 손을 든다. 


"선생님 책 없는데요"

"책은 안 가져올 수 있는 데 그럼 어떻게 하기로 했지? "

"쉬는 시간에 복사하기로 했어요 "

"수업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꼭 다음부턴 쉬는 시간에 복사해 와"


간단한 규칙 리마인드를 아무렇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이 또한 이미 수백 번 반복한 멘트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학습법이 따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를 틀리거나 점수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문제는 몇 가지 질문으로 추려진다. 그리고 해결책은 다르게 제시되어야 한다. 


1. 최소한의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가? 

 - 방금 한 말을 따라 말할 수 있는가? (실제로 듣고 있는가)

 - 필요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가? (실제로 쓰고 있는가)


2. 기본적인 학습을 진행할 이해 수준이 되는가?

 - 규칙 만들기, 일반화하기, 공식암기하기

 - 문제 이해하기 


학부모님께 알리기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의 ADHD 의심이 되는 학생들도 있고, 기본 규칙 암기나 문제이해가 현저히 떨어지는 학생들도 있다. 1번의 경우는 시간이 해결을 많이 해주고 2번의 경우는 반복이 도움이 된다. 사교육 시장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하위권 학생들은 성적 가지고 혼날게 아니라 몇 가지 포인트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수업마다 교재, 준비물을 잘 챙길 수 있는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스스로 교재 정리를 할 수 없거나, 준비물 숙제를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학부모님은 '우리 애가 꼼꼼하지 못해서'라는 말 대신 아이의 주의력 결핍을 의심해야 한다. 10대 초반의 인지능력으로는 당연히 수학시간에는 수학책을, 영어시간에는 영어책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2. 스케줄 관리를 할 수 있는가

추상적인 개념의 본격 시작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원을 여러 개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요일별, 시간별 학원 스케줄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한 번에 인지하는 것이 당연히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몇 년간 반복되었거나,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는 스케줄 관리가 잘 안 되는 학생들이 있다. 추상적 개념의 적용이 어려운 친구들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표를 그려주고 들고 다니게 하면서 많이 나아진 케이스가 있다. 내 아이가 숙제가 자주 밀린다면 그냥 게으른 게 아니라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시간의 양을 추산하고, 일정배치를 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지점에서 이미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이 친구들은 지금 국영수 배울 때가 아니다. 공부는 나중에 해도 삶은 계속돼야 하지 않는가?





생각보다 학원을 목적 없이 오는 학생들이 많다. 학부모님들도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할까요 고민을 하시지만 어떤 경우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혹은 남들이 학원 보내니까 학원을 보낸다. 아무리 지방이라도 영어학원 수학학원 따로 두 개를 보내면 한 아이당 한 달에 6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아이는 공부하기 싫고 부모님은 불안하고 비용은 비용대로 지불해야 한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떻게 키워야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일까? 

학원은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내 아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중학교 때 정해진다던데 사실일까? 


실제로 학부모님들께 들은 질문이다. 어학원 소속 강사인 나는 항상 두리뭉실하게 답변하지만 참 어려운 질문들이다. 학생과 학부모님의 불안을 먹고사는 게 사교육 시장이라고 하던데, 나는 시장 속에 있으면서도 종종 무엇이 맞는 것일까 고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옆자리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해져 불쑥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경력이 10년도 넘은 베테랑 영어강사고 중학생 아이 한 명, 초등생 아이 한 명을 키우고 계신다.  학원을 보내야 하냐는 질문에 학부모로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 저는 학부모욕심으로 보내는 학원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요, 애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때 보내려고요" 몸만 학원에 있고 영혼은 pc방에 있는 경우를 많이 베테랑 선생님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다른 선생님께 같은 질문을 해보니 다른 답이 돌아왔다. " 우리 집은 맞벌이라, 안보내면 애가 혼자 있으니까 그래서 보내는 거죠 뭐" 지극히 현실적인 답변이라 어쩐지 가슴이 콕콕 아프다. 이런 경우 아이들의 학습의욕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 각 가정의 상황은 너무도 다르고 아이들의 성향도 너무도 다르다. 다른 문제에 모두 사용될 수 있는 한 가지 해결책이 있을 리가 없다.


S가 복사하고 돌아오자 수업을 다시 시작한다. 숙제는 11명 중에 4명만 했다. 왜 안 했냐고 물으니 각양각색의 답이 돌아온다. 


"진짜 하긴 했는데 책을 안 가져왔어요"

"아 어제 하려고 했는데"

"숙제가 있는지 몰랐어요"

"숙제하려고 했는데 페이지를 몰랐어요"

"시간이 없었어요"


대답의 내용은 10년째 변함이 없다. 시험을 잘 치고 싶다는 내적동기를 일으키는 건 너무 어렵고, 외적 보상에 움직이기에 아이들이 너무 커버렸다. 질풍노도의 중3. 어떻게 해야 내가 너희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는 선생님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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