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50
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의 50번째 글입니다. 소소하게 자축합니다. 읽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동네 학원 강사로 살아남는 법 요약본이다. 나는 비학군지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영어강사다. 초중고 학생들을 전부 가르친다. 각 단계마다의 장단점이 아직 재밌는 걸 보니 나는 정말 직업을 잘 골랐다.
1. 학원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학습이 일어나야 한다.
실력향상을 원하는 학부모(지불주체)와 구체적인 목표가 아직 없는 학생들(학습주체)을 모두 만족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학습이다. 어떤 학습이 좋은 학습인지에 대한 생각은 선생님들 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동네 학원의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 단어 시험 칠 테니 외워와,라고 말했을 때 외워오는 학생은 10프로가 채 안된다. 그렇다면 동네 학원에서는 의무적으로 5번 쓰기, 온라인학습을 통한 반복하기를 수행할 수 있는 숙제를 제출해야 한다. '시험준비'를 숙제로 내려면 '시험준비하는 시간'까지 숙제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 동사의 3단 변화 외워와,라고 말했을 때 외워오는 학생들도 10프로 미만이다. 수업시간에 10개를 하더라도 같이 읽고 같이 쓰고 같이 외우는 시간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단어를 외우고 공부하는 것이 영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선생님은 없다. 하지만 수업시간을 단어 학습에 할애하는 걸 아까워하는 선생님들이 생각보다 많다. 효율을 극대화하길 원하는 대치동이나 일타의 현강 수업은 그럴 수 있지만, 동네 학원에서는 그럴 필요 없다.
2. 학원은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다.
선생님과 학부모에게 학원은 공부만 하면 되는 곳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학교 친구와 학원친구 또는 학원 같이 다니는 친구로 분류가 될 만큼 또 다른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곳이다. 교우관계,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너그럽게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동네 학원은 보통 재원기간이 길다. 친구들과 싸움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학원강사가 중간에 개입을 할 필요도 있고, 중학교 시험 성적 스트레스를 인간적으로 다뤄 줘야 할 필요도 있고, 고등학생의 진로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필요도 있다. 학업이 학원의 유일한 목표였다면 인터넷 강의가 등장했을 때 동네 학원은 모두 소멸했어야 했다. 학원은 인강이 채워줄 수 없는 인간적 교류가 있는 곳이다.
3. 학년마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
이 부분이 학교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특정 학령기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은 의외로 다른 학년의 학생들의 상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동네 학원의 경우 초등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전체 학생들을 대하다 보니 조금 더 범위가 넓고 유연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관심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이다.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맞춰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직접 하는 게임을 선호하고, 참여형 수업을 훨씬 강렬하게 기억한다.
중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공감이다. 이때 아이들은 본인의 외모와 성격, 친구들의 시선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앞머리를 자른 것 하나 만으로도 교실 안으로 못 들어오고 삐쭉거리고 기도 하고, 친구이야기, 연애 이야기,
성적 이야기에 한참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이들이 표현과 속마음이 가장 다른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뭘 원하는지 알아내려면 다대일 상황보다는 일대일 상황이 더 유리하다. '네가 하는 걱정에 쌤도 공감해, 그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공부 잘하는 애' 컨셉을 잡아보는 게 어때? 이런 밑작업(?)도 제일 잘 통하는 시기다.
고등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리더십이다. 이제 어느 정도 머리가 컸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머리로는 안다. 실천은 어렵다. 작심삼일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자괴감에 빠지고, 쌤 저는 왜 공부계획만 세우고 실패할까요, 하며 우울해한다. 일상을 함께 하는 동네 학원에서 강사가 고등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크 도움은 기계적인 루틴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압적일 필요도 없다.
" 쌤 단어 치기 싫어요"
"그럴 수 있지"
"그럼 안 해도 돼요?"
"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순 있지만 할 일은 해야지"
기계적 루틴을 지켜주고 오늘도 그걸 해낸 학생들을 칭찬한다. 대단하다, 너희 오늘도 해냈어. 하기 싫을 수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거야.
메이쌤은 다른 건 가끔 빼줘도 단어시험은 안 빼준다. 어차피 해야 할 거 그냥 하자. 이런 말이 들릴 때 난 내 할 일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4. 숙제에 대한 고찰
동네 학원을 다니다 보면 최상위권 반 학생들은 크게 문제가 없다. 오히려 잘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문제들 다 구해서 시켜보고 이렇게도 굴려보고 저렇게도 굴려보고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 강사로서 고민하게 만들고 인간적으로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하위권 반 학생들이다. 그리고 이 하위권을 어떻게 잘 가르치느냐가 동네 학원강사의 수명을 결정한다.
학년과 무관한 공통점들이 있다. 집중력이 짧다. 주변 모든 이야기, 소리, 사람에 반응하고 싶어 하고 대꾸하고 싶어 하다 보니 문제를 읽는 속도 푸는 속도 모두 느리다. 암기력도 조금 부족하다. 함께 공부한 규칙, 내용 금방 잊어버린다. 가장 큰 특징은 이 두 가지인데, 이 때문에 숙제를 해결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
집에서는 집중에 방해가 되는 사물들이 너무 많다. 책을 펴놓고도 말 그대로 펴놓기만 한다. 그리고 숙제하는데 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는 양인데도 말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기억이 안 나서 문제를 못 풀었다고 한다. 수업시간엔 쉬운 거만 하고 숙제로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거만 주냐고 말한다. 사실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 어떤 숙제를 내야 학습이 일어날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숙제를 안내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학원을 오면 된다. 이게 불가능한 이유는 학원이 수익을 원하는 곳이라서 그렇다.
매일 선생님을 보려면 그만한 수업료가 책정이 돼야 하는데 그러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주 2회 수업, 주 3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강사로서 그 부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숙제의 형태에 대해 더더욱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학원을 3일만 오지만 5일을 오는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숙제, 레벨별로 도움이 되는 형태의 숙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5. 내면의 평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자주 화가 난다. 소리를 지르다 보니 목도 자주 쉰다. 매일같이 왜요?를 던지는 학생들에게 지치기도 한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초등학생들을 달래느라 기력이 다 빠지기도 하고, 흑염룡에 휩싸인 중학생들을 보다 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도 많다. 공부는 열심히 안 하면서 좋은 대학 가고 싶다는 헛꿈꾸는 고등학생들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하지만 표현할 수 없어 심호흡만 한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는데 이렇게 까지 못 알아듣는 걸 보니 내가 문젠가 하고 자괴감에도 빠진다. 생각보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기가 쉽다. 그만큼이나 학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네 학원 강사로 살아남기 위해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다른 일 만큼이나 크게 중요하다.
다 틀렸다고? 보다는 이렇게 다 틀리면 본인도 얼마나 괴로울까 가 좋다. 짜증보다는 연민을 가져야 한다.
이걸 왜 못하지? 보다는 나도 처음 배울 땐 그랬지가 좋다. 무시보다는 공감을 해야 한다.
어차피 또 해야 알 텐데 한번 더하자. 지겨워하기보다는 약간의 체념도 필요하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학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어떤 좋은 영향도 줄 수 없다. 아이들은 어른의 감정을 기민하게 알아채고 불안해한다. 마음을 다스리고, 침착하자.
6. 초보의 마음 이해하기
초보의 마음을 잊은 강사는 좋은 강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잘 못하는 아이들이 답답해서 화가 나면 전혀 새로운 과목을 배우도록 도전해 보라. 운동, 악기, 외국어 뭐든 좋다. 성인이 되어서 시작하는 취미활동은 심지어 부담스러운 목표치도 없다. 하지만 괴롭다. 초보는 항상 괴롭다. 학생들도 늘 그런 마음이다. 왜 이걸 못해? 선생님이 툭 던지는 말에 '선생님이니까 그렇지' 하는 반발심도 생기고, '너도 많이 하면 잘할 수 있어' 하는 말에 생각보다 큰 힘을 얻기도 한다.
숙제하지 않는 학생들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학습지라도 시작해 보라. 성인 학습지는 비용도 저렴하고 숙제가 많다. 아이들의 마음을 경험하기에 딱 좋다. 매일 쌓이는 숙제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점수에 대한 압박을 이해하고 싶으면 시험에 응시해라. 무슨 시험이든 좋다. 영어강사면 주기적으로 토익이라도 보러 가라. 심지어 지금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이 점수와 합격이라는 글자가 얼마나 큰 불안을 줄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해라.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뿐이다. 학부모의 마음은 단순하다 투입 비용 대비 큰 효율. 복잡한 건 학생의 마음이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당연히 강사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7. 마무리
다른 선생님들의 학원에서 살아남기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생각보다 찾기가 힘들어 직접 쓰기로 결심한 글이다. 동네 학원이라는 말을 계속 쓰는 이유도 학원강사의 여러 부류를 좀 구분하고 싶어서 그렇다. 일타강사, 인강강사, 단과 강사 여러 종류의 강사들이 있지만 사실 숫자로 제일 많은 건 동네 학원 강사들일테니까. 누군가에게 재미있게 읽혔으면 그걸로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많은 선생님들이 댓글을 남겨 주셨는데 그중 아직도 울림을 주는 댓글이 있다.
'가르치는 일은 제 마음을 주는 일인 듯합니다.' 선생님들의 댓글도 저에게 큰 마음으로 다가오니 살아남기 노하우가 있다면 또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