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즈메이즈 Feb 22. 2017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잃는다-영화‘해피 투게더’

야매로 쓰는 영화 감상기 1

두 남자는 격렬히 몸을 섞는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생경하게 다가올 수도, 아니면 마치 일상의 그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 해피투게더 역시 그렇다. 생소한 듯 익숙하게 다가오면서도 찰나의 시간을 놓치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먼 세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

보영과 아휘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영화를 본 것은 최근이었다. 종강을 맞아 중소도시에 위치한 넓고 좋은 고향 집에 갔고, 집에 가면 늘 그렇듯이 열심히 잠을 미루는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가 잠에 들었을 만한 시간에 거실의 티브이를 켠 것이다. 역시 티브이에서는 모두를 잠에 들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무료영화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바닥에 누워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볼 때면 항상 잠에 드는 악취미가 있었음에도 마땅히 볼 만한 영화는 왜인지 해피 투게더 밖에 없어 보였다. 집 안의 사람들을 깨우지 않기 위한 영화치고는 나쁘지 않았고, 내 뇌리에 박히기에도 충분한 영화인 것 같았다. 영화의 첫 인상은 그랬다.

-

 늘 그랬듯이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해야겠다. 아휘와 보영은 일단 사랑하는 사이로 보인다. 보영은 워낙에 성격이 제멋대로이고, 아휘는 그런 보영을 받아줄 만큼 아량이 넓은 인물이다. 그래서 보영은 자주 떠난다고 말하고, 자주 돌아오고, 자주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아휘는 그런 보영의 모습을 참아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참아준다’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무언가’로 생각한다. 그래서 둘의 이인삼각은 비틀거리고 멈추기도 하지만 자주 달리기도 한다.

 둘은 아르헨티나로 간다. 아휘의 방에는 항상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램프가 있다. 폭포를 보러 가는 차를 멈추고 보영이 말한다. 떠나겠다고. 아휘는 그 길로 한 바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작은 자취방도 구한다. 그리고 보영이 돌아온다. 정확히 말하면 손이 다친 보영을 아휘가 찾으러 간 것이지만, 어쨌든 돌아온 보영은 말한다. 나랑 있어줘. 너무 외로워.

 둘은 보영의 말처럼 다시 시작한다. 손이 다친 보영은 기껏해야 담배 정도 밖에 피울 수 없고 아휘는 툴툴대면서도 모든 걸 해준다. 씻어주고, 밥해주고, 떠먹여주고, 같이 춤도 춰주고, 자신은 소파에서 자고. 보영과 싸운 다음 날 보영이 보이지 않았을 때, 그리고 돌아온 보영이 태연히 담배를 사왔을 뿐이라고 말했을 때 아휘는 그 길로 나가 몇 보루의 담배를 안고 온다. 앞으로 담배를 사러 나가지 말라고. 보영은 또 다시 떠날 준비를 하려는 듯 아휘가 진열해 놓은 담배들을 열심히 무너뜨린다.

 아휘는 바를 그만두고 식당에 취직한다. 설거지를 하고 계란을 옮긴다. 그리고 보영과 전화를 나눈다. 사소한 이야기들이지만 청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애인과 하는 전화임을 알 정도로, 그런 전화를 나눈다. 달콤함과는 별개로 보영의 신경질은 더더욱 거세진다. 보영이 손을 다쳐 아휘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 아휘는 보영의 여권을 숨겨두었다. 보영이 아무리 서랍을 뒤져도 찾지 못하게, 절대로 돌려받을 수 없게. 결국 보영은 말한다. 떠나겠다고.

 아휘는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여전히 일을 하고, 식당 주방에서 친구를 만들며 지낸다. 하지만 외로워서 사람을 찾기 위해 간 장소에서 보영을 만나고 껄끄러워 하기도 한다. 식당 친구는 예전에 눈이 아팠고, 지금은 눈을 고쳤지만 그래서 청각이 아주 예민하다고 한다. 곧 땅끝으로 떠날 예정이라는 친구는 녹음기를 들이민다. 사진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아휘를 담고 싶다고. 아휘는 끝내 아무런 완성된 말도 하지 못한다. 작은 울음소리와 클럽의 음악소리만이 녹음기에 담겼다. 친구는 취한 아휘를 집에 데려다 주고, 그런 친구를 아휘는 껴안는다. 친구는 그의 심장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후술한다. 친구가 아휘를 사랑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친구는 땅끝으로 간다. 그 곳에 슬픈 이야기를 놓고 오면 잃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실천하기 위해 틀어 본 녹음기에는 희미한 소리만이 나오고 있었다. 아휘는 결국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간다. 아휘와 보영은 그렇게 서로를 잃었다. 끝끝내 이과수 폭포에 함께 닿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아휘는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홍콩과 아르헨티나는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아휘는 끝으로 대만의 야시장에 간다. 그 곳에서 음식을 팔고 있는 보영의 부모님을 본다. 그리고 막연히 이해한다. 보영이 왜 그런 성격을 가지고 왜 그렇게 사는지에 대해. 빠른 속도로 달리는 모노레일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에는 혼자서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간 아휘.

-

 영화를 보면서 몇 번 울음이 나올락 말락 하던 때가 있었다. 보영의 바지를 털어 여권을 숨기는 아휘의 손에서, 아픈 손으로 미친 듯이 서랍을 뒤지는 보영을 보며, 담배의 불을 나누는 보영과 아휘를 보며, 때로는 둘의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곧 깨질 것 같아 조마조마했고 때로는 둘의 사이가 홍콩에서 아르헨티나까지의 거리처럼 멀어 보이는 게 씁쓸하기도 했다. ‘떠나겠다’와 ‘다시 시작하자’를 반복하는 보영보다도 아휘의 심리가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졌다. 보영이 아팠을 때가 나았다는 아휘의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움직일 수 없는 보영을 돌봐주는 아휘의 마음은 영화의 화면이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될 때의 기분과 동일했을 것이다.

 굳이 지구를 반으로 쪼개지 않아도 아주 사소한 변화들이 둘의 마음을 설명해준다. 사소함이 두 주인공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목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제목은 ‘해피 투게더’, 원제는 ‘춘광사설’. 보영과 아휘는 투게더, 즉 같이 있지만 둘의 사이는 해피와 언 해피의 경계를 넘나든다. 사소한 변화들과 사소한 말 한마디는 투게더를 곧장 언 해피의 장으로 밀어뜨린다. 그렇다면 춘광사설은 어떠한가. 구름 뒤에 비치는 따뜻한 햇살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은 흑백 위주의 화면 속에서 문득 비치는 컬러의 화면을 연상시키며, 너무 외로웠던 보영과 아휘가 서로의 곁에 머물렀던 해피의 순간을 뜻하기도 한다. 슬쩍 지나칠 수도 있는 인물들의 마음이, 배경의 변화가 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해피 투게더의 찰나들이 소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는 결국엔 작은 울음소리였을 것이다.

-

 사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이었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편짐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해피 투게더에서는 거대하게 물을 쏟아내는 이과수 폭포의 커트가 자주 등장한다. 아마 첫 번째로 나왔을 커트에서는 배경음악으로 Caetano Veloso의 Waterfall Cucurrucucu Paloma가 깔리는데, 그 멜로디와 가사(가사는 아마 스페인어일 것이다)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인 것이다. 황급히 기억을 더듬어 본 후 한 때 자주 들었던(물론 지금도 많이 듣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쿠쿠루쿠쿠 비둘기와 아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호선 버터플라이와 해피 투게더의 조합이라면 너무나도 완벽한 조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3호선 특유의 염세적이면서도 삶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별로 나는 상관없다는 츤데레스러운 분위기와 춘광사설의 눅눅하면서도 이국적이고 러블리함과 동시에 방랑자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영화의 배경음악이 쿠쿠루쿠쿠의 원곡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초록창의 힘을 빌려 알 수 있었다-

 영화의 엔딩곡은 The Turtles의 Happy Together를 음악감독인 Danny Chung이 부른 버전이라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드라마 학교 2013의 오프닝곡으로 익숙한 음악이었다. 학교 2013에서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진공의 교실을 배경으로 이 곡이 깔리고, 해피 투게더에서는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이 곡이 깔리는데 느낌 차가 매우 확연하다. 사실 둘 다 썩 괜찮았다.

 나는 나 자신의 사진을 자주 찍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찍을 때면 캔*캠의 Happy Together라는 필터를 자주 사용한다. 극도로 어둡고 매우 초록색이며 급하게 치명적인 척을 하고 싶을 때 주로 쓰는데, 필터를 사용할 때마다 이 영화를 항상 보고 싶었다. 실제로 영화의 색감과 많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

 브로콜리 너마저의 ‘춤’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첫 소절의 가사인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보영과 아휘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이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멍청하게도 나는 그걸 보면서 내가 보영의 발을 밟아서 보영이 떠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했다.

-

 사실은 보영의 성격과 너무도 닮은 친구를 사귀었던 적이 있다. 그와 친할 당시에, 그 친구와 연인이 되지 못해서 아쉬운 동시에 행복했다. 불안한 행복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머리 한 구석으로는 끊임없이 그 친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 그 시절의 나는 아휘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보영이 떠나는 것도 무섭지만,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 더욱 무서운 그런 심정을 말이다.

-

 예전에 보았던 어느 인터뷰에서 모 가수는 이렇게 말했다. 완성되지 못한 연애는 없다고.

-

 해피투게더라는 희대의 명작에 대한 나의 사사로운 썰과 느낌들은 이제 여기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매끈하고 괜찮을 글을 쓸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코너 이름에 야매와 같은 단어는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좋은 영화를 주제로 글을 써서 괜찮다는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좋은 영화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 다른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영화는 글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족하고 못난 글에 대한 변명까지 마쳤으니 정말로 글을 매듭지어야겠다. 우리는 어디에 가면 서로를 만날 수 있을 지 이미 알고 있다. 이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