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관한 간단한 감상 1
실리카겔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9'를 처음 들었고 듣자마자 전곡을 다운로드하였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밴드라는 것은 여러모로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파라솔은 솔직히 처음 들어봤다. 아마 이 글을 쓰고 그들의 노래를 차차 들어보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스페이스 엔젤은 나온 날 다운받았고 당장 들어보았다. 실리카겔에 대한 기대치 때문이었을 것이고, 그 기대치라는 것은 온전히 충족되었고, 덤으로 파라솔에 대한 기대까지 생기게 되었다. 처음 들어 본 스페이스 엔젤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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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카겔의 노래를 가사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음악을 들을 때 가사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인데 그들의 가사는 뭐랄까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런...느낌인 것이다. 실리카겔처럼 인체에 무해하지만 계속 섭취하다 보면 큰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일단 그들이 비주얼로 승부하는 밴드이기도 하고 퍼포먼스가 워낙 대단한 팀이다 보니 나 역시 그런 면에 집중하는 편이었는데, 스페이스 엔젤은 왜인지 가사가 퍼포먼스를 압도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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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파라솔의 향기가 많이 난다. 많이 나는 수준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이고, 갑자기 울린 비상벨 소리-라는 가사가 실리카겔의 등장을 알린다. 전반부는 그야말로 비감이 가득한 낙천이라는 느낌이다. 느릿한 템포와 조화되는 한없이 느긋한 가사-마치 필립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일단은 멈춰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에 반해 후반부는 행복하길이나 평화롭길이라는 가사와는 상반되는 긴장감을 부여하는데, 이러한 둘의 분위기는 한데 모여 스페이스 엔젤이라는 기묘하고도 이상적인 곡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사족이지만 두 보컬의 목소리는 각자의 분위기에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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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들었을 때는 막연히 깨달았다. 이 곡은 아마도 외로움에 관한 곡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스페이스 엔젤은 1960년대 초반 미국에서 제작된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이다. 허접한 영어실력으로 찾아본 위키 백과가 말하기를, 스페이스 엔젤이라는 우주비행사가 우주에 떠도는 적군들을 무찌르고 다니는 그런 이야기인 듯 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동명의 곡에 뮤직비디오로도 쓰이게 된다.
우주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외로움의 집합이 아닐까. 우주의 외로움을 설명하려 시도한 여러가지 작품들(예를 들면 은하철도 999라던가 어린왕자라던가 델리스파이스의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라던가)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스페이스 엔젤로 선발되었던 전사도 사실은 많이 외롭지 않았을까. 안정감을 부여해줄 중력도, 흘러버린 맥주를 닦을 걸레도 친구도 없는 우주 한가운데에서. 그래서 스페이스 엔젤이라는 곡은 외로움을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우주라는 장치를 끌어온 곡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굳이 우주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외로운 준재들이겠지만. 이상 우주産 깊은 외로움의 이상적인 전달, 'Space Angel'에 대한 주절거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