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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즈메이즈 Jan 16. 2023

너는 혼자 서 있는 사람이 아니야

기간제 교사로 살아남기 5

 *해당 글에 등장하는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신상 공개를 방지하지 위해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담임을 맡게 된 반에 은혜(가명)라는 학생이 있었다. 은혜의 첫인상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조용했고 약간 움츠러들어 있는 느낌 때문에 목소리가 크고 활발한 다른 학생들과 달리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은혜는 나의 어릴 때 모습과 아주 닮아있었다.


 은혜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은혜는 항상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거나 가만히 앉아있었다. 학기 초에 핸드폰이 망가지고 나서는 더더욱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며칠간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은혜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학생은 없다시피 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 데면데면하게 굴었고, 여학생들은 이미 무리가 완성되어 자기 무리가 아니면 대화를 잘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은혜는 남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었다. 무언가 큰 변수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은혜는 1년 동안 친구가 없는 상태로 지내야 할 것이었다. 그 상태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건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봤기 때문에 더 잘 알 수 있었다.


 사실 은혜는 친구가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주 결식할 정도로 어려운 집안 형편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혼란, 돌봐줄 사람이 없어 생기는 문제 등을 다층적으로 겪고 있었다. 아버지와는 같이 살지 않았고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으며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오빠는 이미 결혼을 해 자신의 가정을 꾸린 채였다.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전화 상담이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가정과 소통할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복지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여버린 케이스였다.


 어렵게 통화가 되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은혜를 더 챙겨줄 수 없는 현실에 많이 안타까워하고 계셨다. 은혜에게 미안함도 많이 가지고 계신 것 같았다. 또 은혜는 같은 학년의 친구들보다 한 살이 어렸는데 어릴 때 돌봐줄 사람이 없어 학교를 빨리 보낸 게 원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장점이 너무나도 많은 학생이었다. 공부를 곧잘 했고 글쓰기에 능했다. 수업 중에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며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도 수업 내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다양한 성적 향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같이 할 친구가 없으면 그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은혜는 항상 당당하고 성실하게 참여했다.


 은혜는 내가 진행하는 소규모 수업에도 참여했다. 중1이 배우기엔 어려운 내용도 많고 숙제도 많아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은혜는 끝까지 수료해 냈다. 수업을 하며 다른 반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점점 밝아졌고 자기 이야기도 조금씩 표현해 나갔다. 1년 간 수업을 하면서 은혜가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게 가장 뿌듯했다.


 내 중학생 시절과 닮은 모습,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신경 쓰여 할 수 있는 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학원에도 갈 수 없어 방과 후에 남는 시간이 아깝다는 말에 일부러 남겨서 보충수업도 해주고, 모르는 문제를 알려주기도 했다. 장학금 대상자를 추천할 일이 생기면 1순위로 추천했다. 까다로운 부장선생님이 장학금 추천서를 너무 잘 썼다고 칭찬해 주실 만큼 진심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머리를 자르거나 신발을 바꾸는 등의 변화가 생기면 제일 먼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현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기특했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방학식을 하기 며칠 전 은혜의 어머니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어떻게 답장을 드려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진심이 가득 담긴 문자였다. 이런 문자를 받을 정도로 잘 한 건 없는데, 더 많이 신경 써 줄 걸. 나를 반성하게 하는 문자였다.


 은혜와 은혜의 어머니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은혜가 집 안에 혼자 머물 때도 외로움보다는 편안함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여러 명 사이에서 혼자 있을 때도 조급함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누군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길 바란다. 자신의 똑똑함과 능력을 믿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길 바란다. 어려움을 거치면서도 그 어려움을 통해 어른이 되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와 은혜를 닮은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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