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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즈메이즈 Feb 16. 2023

기간제 교사의 송별회

기간제 교사로 살아남기 8

 엊그제 송별회가 있었다. 12월 까지는 계약 연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옆 학교에서 정교사가 발령을 원해 계약 연장은 무산되었다. 2주 전쯤 발령이 완료되는 날 교감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쉽게도 발령이 나서 새 일자리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당연히 연장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어서 관사에서 짐도 다 빼놨는데도 확실하게 확인을 시켜주시는 마음이 감사했다.


 그 후로 게으르게 일자리를 찾아보다가 먼저 연락을 주는 학교 중 적절한 학교와 면접을 보기로 했다.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는데 예전보다 그 수가 적긴 했다. 학생 수가 줄고 교사 티오도 줄면서 기간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체감할 줄은 몰랐다. 연락을 준 학교들은 누가 봐도 교사를 구하기 어려워 보였다. 어떤 곳은 순회를 돌아야 한다고 했는데 자차가 없어 곤란해 거절했다. 어떤 곳은 너무 소규모 학교라 담임에 업무까지 폭탄으로 떨어질 게 분명해 거절했다. 어떤 곳은 종교재단의 사립학교였는데 무교인 내가 일하기 어려울 것 같아 고사했다.


 솔직히 올해는 일하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다. 1차에서 떨어진 마당에 일병행을 고집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한 해 동안 담임을 맡으면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담임을 해서 좋은 일도 있었지만 나의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더 모으고 싶은 욕심과 경력을 쌓고 싶은 마음 때문에 계속 구인공고를 찾아보고 모르는 번호로 오는 구인전화도 꼬박꼬박 받았다. 결론은 일을 조금만 하는 쪽으로 흘렀다. 아직 면접은 안 봤지만 아마 3개월 정도 일하고 임고에 매진하게 될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처음 진지하게 임해야 할 때가 왔다. 고3 때처럼만 집중하면 무슨 시험이든 붙을 것 같은데... 물론 속세의 맛을 투머치하게 본 탓에 쉽지 않겠지만.


 아무튼 현재 일하는 학교의 마지막 출근일이 왔다.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교무실에 남은 짐을 모조리 빼고 인수인계 서류를 간략하게 남겨 놓았다. 생각보다 할 일이 많이 없어 조퇴를 하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퇴근했다. 후련하고 시원하고 즐거웠지만 동시에 다시 올 일이 없다는 게 아쉽기도 했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송별회를 학교에서 간략하게 치렀지만 올해는 회식을 했다. 생각보다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중 수석선생님은 이 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할 때부터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주시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셨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퇴직을 하셔서 내가 다 아쉬웠다. 오랜 기간 몸담으셨던 학교릉 졸업하고 더욱 즐거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떠나는 선생님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도 마이크를 잡고 한 마디 해야 하는데 어이없게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정말 울 생각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선생님들을 보는 순간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학부모와 학생들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났다.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는데 왜 하필 그때 힘든 기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현 학교에서 1년 7개월 근무했다. 학교 안에 위치한 관사에서 살다 보니 훨씬 더 오래 일했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아파 나를 힘들게 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정말 나쁜 마음을 가진 학생은 없었다. 선생님들도 나에게 다 친절했고 임용 친다고 업무도 많이 배려받아서 죄송한 마음도 있다. 내가 임용을 합격해도 이런 학교는 근무하기 어려울 것 같다. 1년 반 동안, 잘 있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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