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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Nov 22. 2019

"다 티 나"

"다 티 나"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 얼굴에 다 티 나"


거절의 말은 못 하고 있는데 표정은 열일 했나 보다. 대답이 나오기 전에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내 표정은 그렇지 못했나 보다. 생각이 표정으로 나온다는 게 참 신기하다. 뇌와 연결된 신경세포들이 아주 섬세하게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모여 표정이 될 텐데... 그래서 티가 나는 건가? 말과 글보다 더 큰 전달체가 표정이 아닌가 싶다. 이성친구랑 싸우고 난 후 얼굴 보고 화해하라는 말의 의미를 알겠다. 전화는 표정이 안보이니까. 티가 많이 나는 얼굴이라 힘든 부분이 있다. 분명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좋아도 좋은 척을 감춰야 할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얼굴에 다 드러난다면 열심히 하고도 마이너스가 되고 좋아하고도 플러스가 되지 못한다. 티가 많이 난다고 하니 두 가지 방법을 연습했다.


무표정 연습

정말 진지한 얼굴로 얼굴 표정의 세포에 집중한다. 움직이지 말라고 신호를 보낸 뒤 최대한 표정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이거 의식하고 연습하면 된다. 신기하게도 무표정을 연습했는데 말도 무미건조해진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 나올 때가 있다. 회사 다닐 때 상사와의 대화에서는 연습이 필요 없다. 바로 실전에 투입해도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무표정이 된다.


과하게

이번엔 모든 표정 세포들을 자극해서 얼굴에 최대한 주름을 만든다. 눈이 작아지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가끔 위기가 올 때마다 눈썹을 추켜올리며 커다란 눈망울을 만든다. 내 감정을 감추는 정도에 따라 표정 세포를 더욱 가열차게 자극한다. 미간과 입술 주변에 약간의 통증이 오지만 이 정도면 내 감정을 안 들켰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이것 또한 상사와의 대화에서는 연습이 필요 없다. 생존 본능이 깨어나며 얼굴에 있는 모든 표정 세포가 반사적으로 살아난다.


티 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근데 좋은 것도 아닌 것 같다. 표정은 말과 글보다 직설적이고 즉각적이다.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하고 시간이 흐른 뒤 표현하는 말과 글하고는 다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가식은 필수 불가결하다. 순수하고 순진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 할 때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라고 하는가 보다. 협상을 할 때, 계약을 따낼 때, 기타 등등 우리가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할 상황들이 많다.


업무관계든 지인관계든 표정관리는 관계를 설정해주는 바로미터다. 모든 표정을 다 보여주진 않는다. 감추거나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 참 어려운 게, 티 난다는 말을 많이 듣다 보니 말이 많아진다. 표정하고 다른 내용을 전달해야 하니 말이다. 싫지만 좋다고 할 때, 좋은데 티 내면 안 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을 많이 한다. 굉장히 논리적이고 질서 정연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자꾸 상대방의 표정을 보게 된다. 나만큼이나 상대방도 표정관리 중일 수 있다. 그 생각까지 하다 보면 내가 말해놓고도 무슨 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표정하거나 과하게 표정을 바꾸기도 한다. 


말이 많아지건 표정이 풍부해지건 결론은 이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건지,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설득이 필요한 건지, 지금과의 거리를 꾸준히 유지하고 싶은 사람인 건지 그런 관계 말이다. 이제는 제법 사회에 나온 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래갈 사람, 지금을 위해 같이 하는 사람, 앞으로가 기대되는 사람이 많아졌다. 표정과 말 모두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마음속에서, 그리고 내 생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어떤 관계의 사람인지를 인식하고 표정과 말을 선택하는 것 같다. 싫어서 그리고 좋아서 티가나는 것도 있겠지만 이 사람과 관계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오는 티남은 가끔은 내가 굉장히 가식적인 사람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그만큼 티가 난다는 것은 경험이 많아졌고 생각이 많아졌음이라. 그리고 조금씩 좁고 깊게 만들어지는 인간관계의 단편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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