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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숭이같은비버 Jul 26. 2024

3. [외노자 회고록] 대학원에서 런던으로 유학

억지로 런던을 가다

대학원 2학년때는 해외연수를 가야만 했다. 이걸 원래 몰랐던 것은 아닌데, 선택할 수 있는 학교들이 그리 수준이 높은 학교가 아니었기도 하고, 나는 국내에서 취업할 건데 굳이 별로인 학교를 큰돈을 내가면서 다니고 싶지가 않았다. 학비가 높아서 부모님 돈을 쓴다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는 김에 인턴이라도 하나 하고 와야겠다 생각했다. 제일 큰 이유가 가서 학교만 다니다 오면 돈이 너무 아까울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학부 때 교수님들이 해외에서 일을 했었던 분들이 신데 매번 국내와 해외는 수준이 천지 차이라고 말씀하셔서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다만 국내와 해외의 수준차이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차이가 크면 왜 본인은 한국에서 교수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처음 가서 살 집을 구하고 계좌를 개설하는 등 기본적인 것이 끝난 뒤에는 인턴 지원을 시작했다. 처음 지원할 때부터 벽을 느꼈다. 레쥬메를 보낸 회사들에서 한 군데도 연락 오지 않았고 어쩌다가 헤드헌터펌의 리쿠르터가 전화 오긴 했지만 의미 있는 전화는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생각했다. 그래도 한 군데라도 면접을 보고 큰 시장에서 내 실력 평가를 받아본다면 너무 좋을 거 같다. 좋은 경험이겠다. 면접 1개를 보는 것을 목표로 생각했다. 그래서 인턴만이 아니라 풀타임도 보이는 대로 지원했다.


링크드인 피드를 스크롤하던 중 잡포스팅 하나를 보게 되었다. 채용 공고가 나와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고 처음 들어보는 회사였지만 공고를 한 사람이 유명 대학, 유명한 회사 출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제를 받았다. 내 직무를 지원하게 되면 여러 종류의 과제를 받을 수 있는데, 이론에 가까운 테스트가 있고 실무에 가까운 테스트가 있다. 나는 당시 이론보다는 실무 테스트에 훨씬 강했다. 지금은 이론 부분을 상당히 보완해서 분야에 따라선 자신감 있지만 여전히 실무 관련 테스트가 더 좋은 편이다. 그리고 실무 중에서도 내가 자신 있는 분야였다. 나 자신을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걸로 떨어지고 면접기회도 얻지 못한다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도 동시에 들었다. 이때 런던에 같이 간 학교 동기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내가 이 면접을 준비하는 바람에 여행도 미뤘다.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과제를 수행했고 면접 기회를 얻게 되었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나름 기뻤던 거 같다. 이때도 면접 보고 평가를 받는 게 목표였다. 합격까진 바라지 않았다. 회사는 8층짜리 건물에 있었는데 갈색 돌 입면이라 멋있었다. 로비는 벽이 음각으로 멋있는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경비 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셨다. 신기했다. 나는 지금도 회사 건물, 인테리어를 조금 중요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느낌이 좋았다.


특별히 어려운 질문은 없었다. 레쥬메나 내가 한 과제를 기반으로 면접 질문이 들어왔고 그 부분은 준비되어 있었다. 과제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면접관 중엔 유명 대학 수학 교수 출신이면서, 업계 탑티어 회사 임원 출신이 두 명이나 있었다. 이런 분들한테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영광이라 생각했다. 특이한 질문은 내가 동물이라면 무슨 동물이고 이유는 뭐냐고 물어봤다. 원숭이라 답했다. 이런 질문은 왜 물어보지 싶었다. 같이 일할 사람으로서 그냥 재미로 물어본 거 같은데 그래도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 이런 건.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합격하고 싶었다. 멘탈이 많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면접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큰 회사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너무 해보고 싶었다.


일주일 뒤 정도였던 거 같다.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합격이라고 했다. 기쁜 마음도 잠시, 풀타임 포지션이라 연봉도 제안했는데 너무 낮아서 충격받았다. 게다가 나는 아직도 이때 외국에서 일한다는 거에 두려움이 있었다. 외국에서 내가 혼자 어떻게 일하지? 막연히 무서웠다. 그런데 연봉은 왜 이렇게 낮지? 짜증 났다. 그래서 나는 한국 가도 이거보단 많이 받는다고 조정을 요구했다. 내가 이 연봉을 학부 교수님한테 말하자 인종차별 아니냐고 반문하셨다. 그땐 몰랐지만 런던이 특정 업계 내에서도 특정 회사들이 아니면 엔트리 연봉은 한국이랑 별반 차이가 없는 편이다. 다만 보너스는 따로고 상승률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이 모든 일이 2020년 1월에서 3월 초까지의 일이다. 면접볼 때도 이탈리아에서 중국에서 넘어온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심각해져 갔다. 이탈리아 근처로 친구랑 휴가를 계획했는데 찝찝해서 취소를 했다. 그 이후엔 더 급박해져 갔다. 집에 휴지가 떨어져 사러 나갔는데 휴지가 그 어디서도 살 수가 없었다. 마트에선 인당 계란이나 우유 제한을 걸었다. 황당했다. 이때 그래서 휴지를 한국에서 택배를 받았다. 학교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 인사팀은 몇 주가 지나도 연락이 안 왔고 이후엔 불확실성 때문에 채용을 취소한다고 연락 왔다. 새로운 회사에 다시 도전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너무 심각해졌다. 마스크도 구하기 어려웠다. 영국 학교에서도 본국 귀환을 권유했다. 같이 온 친구는 먼저 한국으로 갔고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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