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터널에서 걸어 나오기
이제는 마음고생하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도 안다. 미래란 알 수 없다는 것. 삶이란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임을. 하지만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난 처음으로 내 길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책임지며 성장했다. 맹목적으로 달리기만 하던 그 전보다, 싫어하던 일로 돌아갔더라면 펼쳐졌을 삶보다, 매 순간이 더 충만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30대라는 나이가 그런 시기일지도 모른다. 좌절의 터널에 선 것은 만 서른 살이 되던 해 - 젊다면 젊지만, 새로운 길을 찾기엔 부담이 되는 나이였다. 입사 동기들은 벌써 8년 차.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회계사가 되기 위해, 와튼 MBA에 합격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하지만 내 카드는 모두 꽝이었으니 도리가 없었다. 예전처럼 길을 가리켜줄 이도 없으니 나 스스로.
스스로를 한심할 정도로 모른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서른 살이나 먹은 애엄마인데 나에 대해 아는 거라곤 "고기를 좋아하고 오이를 싫어한다"처럼 얕은 수준이었다. 커리어 관련 책들을 섭렵했지만, 내 적성은 여전히 아리송했다. 사자자리 성격을 보고 '어머, 나야 나'라며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처녀자리고, '이 성격도 난데?' 싶을 때의 당혹감이랄까. 직업이 다 어렵다면 어렵지만, 또 할라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케터, 헬스케어 컨설턴트, 은행가, 리서치 애널리스트, 심지어 미국 의대진학을 준비한다는 대학 친구도 만났다. 그전까지는 내가 '할 만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해서 후자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무 고민 없이 그저 경쟁이 치열한 직종, 이름난 회사, 높은 연봉만 쫓아왔던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때 만나게 된 분 중 하나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크게 성공한 한국인 재무설계사셨다. 어쩌다 알게 된 그 여자분이 나를 예뻐해 주셔서 보험의 길로 나를 인도(?)하려 애를 쓰셨다. 처음에는 '와튼까지 나와서 보험 아줌마가 될 수는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어른에게 삶의 자세를 배운다는 느낌으로 한두 번 만나 대화를 하다 보니 의외로 관심 가는 부분을 발견했다. 그분 고객들의 이야기였다. 수십 년 전 제각각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기반을 일군 그분들에게는 대부분 인간극장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사연들이 있었다. 가슴 저릿한 기구함,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 대반전의 서스펜스와 짜릿한 성공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각자에게 꼭 맞춘 해결책을 제안하는 게 흥미로웠다. 그 무렵, MBA 지원을 도와달라는 요청들이 들어왔다. 내가 지원할 때 썼던 에세이를 좋게 본 대학 선배에게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영역이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이 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해 겨울, 네 명의 지원자와 작업했다. 그 과정에서 회계법인이나 투자은행에서 일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과 의욕을 느꼈다. 심지어 한국의 시댁을 방문했을 때 베란다에 나가서 오들오들 떨며 미팅을 해야 했는데도 재미있었다. 당시 시댁에는 인터넷이 깔려있지 않았고, 베란다에 나가야만 신호가 잡혔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산이 따뜻한 남쪽 나라이긴 하지만 12월 한겨울밤이었다. 베란다에서 달달 떨면서도, 독일에서 전해주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빨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계사로 일하던 때에는 주식하는 일반인들도 줄줄 외우는 대형 상장사 매출과 이익 규모도 그저 멀고 먼 이야기처럼만 느껴졌었는데,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상하리만큼 작은 디테일까지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들이 꿈에 닿을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주는 역할에서 열정을 찾았다. 새로운 회원들을 만날 때는 가슴이 뛴다. 그들이 어떤 눈부신 이야기와 꿈을 들려줄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Truth is stranger than fiction라는 말처럼,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는 여느 대단한 소설가의 창작물보다 힘이 있다. 왜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그린피스에서 활동했는지, 힘들게 고시 1차를 합격하고 왜 2차 당일날 시험장이 아닌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지. 듣고 공감하고 감탄한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본인들은 깨닫지 못하는 패턴이나 열정의 뿌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가슴 아픈 가족사가 삶의 방향을 결정지은 이도 있고, 막연히 열심히 산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은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성장은 합격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추와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서 온다. 때로는 글짓기 선생으로, 때로는 페이스메이커로, 때로는 카운슬러인 나 또한 옆에서 한걸음 성장하는 호사를 누린다. 이제는 수년이 지나 인생친구가 된 이들도 많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회사 동기 언니와 소개팅을 주선해 이제는 형부라 부르는 이도 있고, 학교 합격 후 결혼하고, 원하던 커리어를 성취하고, 아빠가 되고, 승진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공유해주는 이들도 있다. 고민이 생기면 상의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좌절을 겪으면 위로한다.
삶의 좌절을 겪는 이들에게 나는 늘 마음을 열고 길게 보라고 말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어떤 길이 당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길인지는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 10년 전 취업에 실패하는 시련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문이 닫힌 다음에야, 완전히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말은 진리다. 미국 어드미션 컨설팅 계에서 가장 유명한 컨설턴트 중 하나인 Stacy Blackman은 9/11 테러와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구직에 실패하면서 본인의 사업을 시작해 업계 전체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언제나 활동적이었던 내 사촌동생은 6년 전에 하반신 마비가 되는 사고를 겪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각고의 재활 끝에 이젠 운전도 하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닌다. 작년부터는 유튜브를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있는데, 예능, 강연 등으로 반경을 쉼 없이 넓혀 나가고 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지금 실패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장기적으로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모른다. 그러니 지금 깜깜한 어둠 속에 홀로 서 있더라도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라. 오늘 당신의 실패가 10년 후 당신 삶의 가장 큰 축복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