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수유 Sep 07. 2022

지금 어디쯤, 대안교육에서 공교육으로

지리산에서 살아보기

텃밭에서 키운 토마토

이곳이 온 지 7개월. 아이들도 나도 많은 격변의 시기를 거쳐 지금은 좀 안정이 되었다.

대안교육에서 공교육으로 옮겨 왔고 한 번 크게 변화를 겪고 나서야 큰 아이의 성향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는 어디쯤 있는가

공교육으로 넘어와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라면 나의 기준과 신념들이다. 그리고 나의 헷갈림과 불안(불안은 나의것, 투사)이다. 대안학교를 2학년까지 마친 건이를 데리고 이곳에 왔을 때 참 든든했다. 워낙 생활을 잘하기도 했고 학교 선생님들과 건이, 부모,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의 일상들에서 이질감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믿고 맡기는 편이었다. 부모의 학교  문턱이 낮고 부모 참여가 많은 편이어서 오고 갈 때마다 듣는 대화들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랬던 내가, 이 시골까지 내가 잘한 짓일까

그간의 일종의 울타리라면 울타리를 벗어던지고 시골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지리산 깊은 곳까지 찾아 들어왔다. 그 어떠한 교육보다도 자연 속에서 크는 아이들은 다를 것이다, 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이곳에 와서 느끼는 것은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이다. 사계절 자연을 피부로 몸으로 느끼던 아이들이 빠르게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행복감을 찾는다는 것이다. 건이는 단단하니까, 했던 나의 믿음은 자연놀이보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대화들로 어려워하던 건이를 발견했을 때, 흔들렸다.

그때의 죄책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빨리 이 시골의 삶을 접고 다시 예전 학교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놀이문화에 대한 다름을 익히고, 자연놀이를 즐겨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음을 아이들과 내가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게임도 할 수 있지. 대한민국에 정말 많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지낸다. 중학교 때 게임에 빠져 인터넷선까지 아버지에게 잘려봤던 소위 게임덕후 내 남편은 이제는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아직 건이, 인이와 게임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못했다. 핸드폰도 아직 주지 않았다. 포켓몬 카드도 괜찮고 용돈으로 편의점에 가서 마음대로 사 먹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건이는 살아남는 법을 익히고 있다. 3학년 9명 중에 남자아이는 건이 포함하여 총 3명이었다. 그 아이들이 하는 대화에서 건이는 게임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보지 않아 많이 소외감을 느꼈고 많이 힘들어했다. 시간이 약인지 이제 많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건이 친구들이 집에 오면 같이 모두의 마블을 하 거나 계곡에 같이 가고, 건이가 친구네 집에 가면 게임하는 영상을 같이 보 거나 만화를 보고 올 때도 있다. 건이가 게임은 아직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했기 때문에 나도 타협하여 이 상황을 지속하고 있다. 자연을 놀이로 여긴다 거나 하는, 결이 비슷한 친구들 사이들이 아니라 다른 놀이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기쁨을 느끼고 같이 노는 게 좋은 그 방식과 과정을 익혀나가는 건이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나도 좀 새롭다. 게임이 화두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함께 어울려 가는 그 과정에서 셋이 뭉쳐가는 과정을 나도 같이 곁에서 느끼니 좋았다.


 옳고 그르다는 신념과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안교육과 공교육은 좀 다른 것 같다. 그게 인식되고 고민하는 것이 나의 신념과 기준에서 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이곳에 와서 아이들에게 수학문제지와 영어 학습을 처음 시켜보았다. 하루 30분이라도 스스로 풀어내고 틀린 것을 다시 돌아보는 그 과정에서 나는 아이가 겪어내며 얻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게 어렵고 공부가 재미없는 아이와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를 씨름하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내적 갈등이 있지만, 그래도 스스로 해내는 습관에 대한 나의 신념이 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아이, 공부할 시간 동안 놓치는 계절의 변화들, 무엇이 맞지? 내게 하는 질문들 속에서 그래도 해내야 하는 것들을 아이에게 숙제처럼 준다. 그래도 이게 맞지, 하는 나의 신념들을 아직은 유효하다. 학교도 더는 차로 라이딩해주지 않고 스스로 걷게 하는 것, 네가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라는 말들을 계속하고 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내가 늦어 차로 학교 가는 게 어렵다고 하니 둘이 우산 하나를 나눠지고 인이 가방에 숙제 인쇄물이 있어 젖으면 안 되니 우산은 건이가 들고 인이가 가방을 앞으로 해서 스스로 집까지 걸어왔다는 소리를 들으니 참 대견하고 기뻤다.

지리산 중턱에 사는 아이에게, 그럼 눈이 오면 어떻게 학교까지 다니니?, 물으니 아주 자연스럽게 뭘 그런 걸 물어요, 하는 말투로 "아이젠 끼고 가는데요?" 했던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이곳에서 아이들과 하고 싶은 교육은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의되지 않음, 그래서 오는 불안과 부모 됨의 나와 아이들의 소통

 게임, 욕, 포켓몬 카드 등 내게 더는 합의된 울타리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곳에 도착하고 난 뒤 나와 아이들이 겪었던 문화 충격은 실로 컸다. 그렇기에 아직도 선택이 어렵지만 이 과정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과정을 보고 있기에 이곳에 와서 이제야 좀 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이곳에서 좀 더 지내보고 싶다는 미련이 있기에 아이에게 내년에 우리 돌아가자, 고 말을 못 하고 있다. 건이는 아이들과의 관계보다도 공교육 안에서 느끼는 어려움들을 가끔 내게 말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늘 그렇듯이 방향을 생각한다. 다시 민들레라는 잡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읽고 부모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다 보면 뭔가 나의 이 방향도 뚜렷해지지 않을까. 나의 신념과 기준을 분명히 알고 그래야만 명확히 아이도 헷갈리지 않을 테니까. 아이의 의견도 소중하기 때문에 나는 더 고민하는 것 같다.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자고 생각한다. 어느 상황이건 아이는 부모를 믿어주니까, 그 믿음으로 바로 서고 싶다.


굳이 지리산이어야 했을까 싶지만, 큰 아이의 바람대로 이곳 지리산을 많이 밟고 느끼는 교육을 하고 싶다. 지금 나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들었기에 기록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지리산의 하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