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넘어오기까지 몇 번이고 고심을 했었다. 남편의 반대와 어쩌면 내 삶 전체를 바꿔본다는 것이 내게는 큰 도전이었다. 혼자라면 어디든 가고 어디서건 머물렀을 테지만 내게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넘어온 직후, 거울을 보았을 때 내 이마에 오돌토돌한 두드러기 같은 것이 잔뜩 돋아난 것을 본 순간 알았다. 내가 그간 마음을 많이 썼구나. 그것이 이곳까지 넘어온 과정의 기록들을 보여주는구나.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기를 쓰고 온 것일까. 지나고 보니 그냥 살고 싶었다. 그저 그뿐. 연고라고는 건너 건너 아는 지인뿐. 공동체가 잘 발달되어 있고 오래된 천년 고찰이 있는 마을이라는 것. 그리고 급작스레 구하게 된 한옥집까지.
기대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날들이었다. 겨울에 넘어와 벌써 겨울 초입을 앞두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다시금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것인가, 아이들을 키우며 막상 부닥치는 어려움들도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많이 쉬었고, 많이 보았고, 많이 나누었다. 그저 그뿐. 결국은 더 오래가 지나고 나면 어쩌면 내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겠다는 생각은 확실하다. 이곳은 독특했고, 사람들도 선했다. 그저 그렇게 잘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기대들과 고민들은 이내 바스러지고 늦가을이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바스러진다는 표현이 조금 서글픈데, 그만큼 그냥 지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인생에서, 삶의 한 과정에서. 떠난다고 생각하면 조금 슬플 정도로 이곳이 참 좋았었을까. 너른 집, 깊은 어둠 속에서 때로는 무섭고 창을 꼭 닫았으며, 귀를 쫑긋거리기도 했었다. 아이들의 자라남과 나의 마음들이 자주 오고 가며 집 안팎을 채웠고, 풀과 나무들은 때가 되면 나고 때가 되면 졌다.
그렇게 보낸 하루들을 살피니, 참 좋았구나 싶다. 뭔가를 이루려는 마음들 속에 일상이 짓누르는 서성거림까지, 그냥 그저 그뿐. 그렇게 지나왔으니 또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집 앞 국화를 따서 말릴 것이며, 감을 깎아 곶감을 널 것이며, 가만히 가만히 조금은 가만히 머무르다 갈 것이다. 어디까지 이 여행이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의미를 굳이 찾지도 않으며 그냥 좋았구나 싶은 게 바람의 살결과 지나가는 구름의 얼굴들이 가슴에 남았다. 오늘은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울고 웃었다. 산에서 단풍이 켜켜이 내려온다. 멀리 산을 바라본다. 그저 그뿐. 너무 마음을 쓰지도 뺏지도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겨울 동안 뿌리가 얼었던 것인지 집 앞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봄에도 여름에도 여태껏 잎을 맺지 않는다. 그렇게 고목으로 말라죽어갈 것인가, 싶었는데 그 위로 새들이 날아든다. 잠시 쉬어가는 곳. 그렇게 스스로의 쓰임을 다하고 있는 나무가 다시 보인다. 그런 작은 기쁨들이 모이는 곳.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