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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수유 Dec 21. 2022

내면도 자유로운 것처럼 외면도 자유롭게 살아

너는 너고 나는 나인 각자도생 부부

 

 남편에게서 어젯밤 자정쯤 카톡이 왔다. 현재 남편과는 나의 지리산 살이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내가 지리산에 있는 한옥 전셋집에 들어갈 것이고 같이 보러 가자는 말에 몇 번을 거부했던 남편이었다. 나는 기어코 내려왔고 남편과 아이들을 거슬러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였다. 역시나 큰 아이는 초반에 적응이 쉽지 않았고 남편도 주말마다 세 시간반을 버스 타고 내려오고 있다. 내 마음에 켜켜이 여러 감정이 쌓이며 가끔은 미안함 때로는 고마움 여러 감정으로 찾아들며 아이들과 남편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젯밤 남편이 카톡을 보내왔다.

12년 만에 만난 동기 동창들에게 마누라의 지리산 살이로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오히려 너는 그럴 줄 알았다고. 결혼 전 남편은 딩크족에 인생에서 결혼이란 선택지가 없는 사람이었다.

소개를 받고도 서로 이상형이 아니어서 미술관에서 서로 떨떠름해 세 시간 넘게 말을 거의 붙이지 않았던, 서로 지리산 종주한 것이 공통사가 맞아 그때부터 말문이 트였던 게 처음 시작이었다.

입사해 십 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처음 만난 동기들에게서 너답게 산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남편은 문득 유별난 마누라를 얻어 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나를 닮은 마누라였다고.


"지금 이 순간은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헷갈린다 야."


그 말이 문득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내 삶에서 정말 많은 것을 거스르며 큰 변화를 시도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곳까지 와서 생사람 몇 사람을 고생시키나 그런 마음이 차오를 때면 그냥 눈앞에 놓인 자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냥 걸었다. 그렇게 사계절을 보내었다.

이곳에 왔다고 내 삶이 달라지 거나 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캐나다에 로키산맥을 가보겠다고 28살에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도 좌충우돌 그 당시 내가 겪을 수 있는 사건들에 부딪치고 깨지며 타국 생활을 보내었다.

이곳에 당도한 뒤 나는 그만큼의 내 인생의 경험을 얻었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의 결들을 보았다. 나는 그렇게 내가 가지 못한 길을 여행하듯 살아 보았고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지나왔으니 그걸로 된 것 같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에너지로 가득한 남편의 내면이 삶의 무게로 이고 지고 사는 걸 언뜻 볼 때면 내 마음도 조급해질 때가 있다. 더 이상 남의 편이 아닌 내 삶의 동반자이기에 남편의 내면이 안전한가 하는 이상한 부채의식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함도 같이 왔다. 그럴 때면 늘 "됐어."라는 남편의 말에 뭐가 됐느냐고 뭐든 스리슬쩍 자꾸 들이밀었다.


우리가 만나고 지금까지 이어진 이유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지만 서로가 각자의 몫으로 자유롭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시골이라는 선택지로 자유를 경험한 만큼 당신도 다른 몫으로 내게 기대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물론 남편의 성격상 내가 굳이 너에게 왜 기대느냐고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할 테지만 말이다. 나는 어쩌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구분 지음에서 어쩌면 내 인생에서 부부로 연을  맺어도 서로가 서로를 한계 짓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남편은 늘 각자도생을 강조하며 내게 묘한 긴장감을 줄 때가 더러 있었다. 우리가 지니고 자라온 결은 다른 무늬로 존재하지만 그렇기에 때로는 이런 결이!?, 하며 놀라고 또 신기하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해내며 재밌게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갈 것이다. 너라면 이런 나를 알아채겠지, 이런 미친 짓을 해도 너라면 이 정도는 이해하겠지, 그런 인생의 방향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가 서로 알고 있으니까. 물론 그런 신뢰는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이 내가 아닌 남을 상처 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야 한다고. 서로가 서로의 경계를 지키며 자유로울 때 우리는 진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이번 시골행만큼은 나도 1년이라는 시간이 썩 무진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늘 마음이 묵직하고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에 아파왔다고.

우리가 또는 너와 내가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부단한 일상을 살며 그 안에서도 소소히 삶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이 세상에서 이렇게 어두운 사람은 처음 봤다던 남편과 달리, 나는 이렇게 밝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싶게 남편은 모든 감정과 생각이 표정과 몸짓으로 나오던 사람이었다. 늘 평온하려 애쓰는 나와 달리 남편은 기쁘면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슬프면 그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별에서 살다가 하나의 별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다.

그게 어디로건 너로 나로 서서 흰색에는 검은것이 검은것에는 희색이 숨어 있는, 그렇게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라는 항로에서 지치지 말고 자유롭게 살자.

어젯밤의 별안간의 문자가 지나온 우리의 십 년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게 어디건 우리는 자유로울 거라고. 자유롭게 커 갈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으니 그것으로 우리의 몫을 채워낸 것 같다고. 조만간 지리산을 오르자고 말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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