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
"나 전교 회장 나갈 거야."
2주 전 저녁을 먹으면서 초등5학년 아들이 말했다.
"나가면 될 것 같아?"
갑작스러운 25학년도 1학기 전교 회장 선거 출마 선언을 한 아들에게 나는 물었다.
"응, 지금까지 선거를 보면 여자들이 많이 나오더라고, 이번에 남자 후보가 별로 안 나올 것 같아"
아들의 분석에 따르면, 남학생은 남자를 여학생은 여자에게 투표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선거에 남자후보는 자기만 나올 것 같고, 여자는 2명 이상 나올 것이니 여학생 표가 분산되어 남자가 당선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아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여학생 2명, 남학생 3명의 후보자가 등록되었다. 아들은 후보자 사퇴여부를 고민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출마를 결심했다.
선거 3일 전, 선거 공약 포스터를 함께 제작하면서 아들의 3가지 공약을 처음 듣게 되었다.
첫 번째 공약은 "대나무숲 만들기"였다.
나는 대나무숲을 조성하는 공약으로 이해를 하였고, 학교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공약은 실천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대나무숲은 학생들이 무기명으로 건의사항을 말할 수 있는 채널. 즉, 건의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영감을 얻은 마케팅적인 네이밍이었던 것이다.
"아들, 투표자들이 아빠처럼 진짜 대나무숲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 가능성은 없을까?? "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면 포스터에는 건의함이라고 적고 발표할 때는 '대나무 숲이라 이름의 건의함'을 만들겠다고 말해야겠다." 아들이 답했다.
나머지 공약들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함께 정리했다. 보고장표처럼 딱딱한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아들은 글자수가 줄어들어서 작업이 빨리 끝났다는 것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선거 날, 결과는 득표 3위로 남자 부회장이 되었다. 시무룩한 아들을 달래기 위해 저녁에 파티를 열었다. 파티 메뉴는 아들이 선정한 배달 메뉴인 치킨과 마라샹궈.
"아들, 며칠 전 읽었던 노인과 바다 기억나? 주인공인 노인은 84일 동안 고기를 못 잡다가 오랜만에 잡은 고기조차 상어한테 뺏기고 빈손으로 돌아오잖아."
"응, 그런데 또다시 바다로 간다고 했지. 포기하지 말아라. 그 말하고 싶은 거지?"
"응, 그리고 너는 아빠보다 용기 있는 것 같아. 당선 확률이 낮은데도 포기하지 않았고 선거운동을 도와준 친구들을 보면서 우정도 느낄 수 있었잖아"
(추운 날씨에도 등교시간에 선거운동을 도와준 친구 3명은 결국 감기에 걸려서 투표 당일 결석했다.)
"맞아, 그래서 부회장이지만 내 공약들은 지킬 수 있게 노력하려고"
"그래, 불꽃남자 정대만"
"난 강백호가 더 좋은데?"
"강백호는 지금 상황이랑 안 맞잖아"
"그건 그래"
그렇게 아들의 전교 회장 선거 캠프 해단식 끝났다.
나는 학창 시절 반장선조차 출마한 경험이 없다. 무엇보다 떨어지면 쪽팔릴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용기 있게 출마를 결심하고 끝까지 완주하는 아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