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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한날의꿈 Feb 24. 2018

특별한 독자의 눈으로 본 ‘어린왕자’

<<어린왕자의 눈>>, 저우바우쑹 지음, 블랙피쉬 펴냄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속 어린왕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 어린왕자 이야기에 철학적인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자의 ‘눈’이 있다. 이 철학자의 눈을 빌려 어린왕자를 다시 읽으려는 나와 같은 평범한 독자의 ‘눈’도 있다. 어린왕자를 새롭게 읽는 ‘특별한 독자’ 저우바우쑹은 홍콩의 철학자이며 어린왕자를 철학적 우화로 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어린왕자의 눈>>이란 책을 썼다.


특별한 독자의 눈을 빌리기 전, 평범한 독자의 눈으로 오랜만에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 보았다. 마침 <<어린왕자의 눈>>책에 딸려온 <<어린왕자>>작은 책이 있어 읽었는데 <<눈>>책에서 인용되는 부분을 밑줄 그어놓아 그 부분의 의미를 나름 생각하며 읽었다. 내 나이에서 십의 자리가 바뀔 때마다 어린왕자를 만났던 거 같다. 분명 읽을 때마다 감동 받은 부분이 달랐고 좋았던 기억은 있으나, 뭔가 더 깊은 의미가 있을텐데 다 찾아내지 못하는 거 같은 찜찜한 후기가 남았다.


이런 찜찜함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독자, 철학자의 눈으로 어린왕자를 만나볼 차례다. 생텍쥐페리는 헌사에서 “어른들도 모두 한 번은 어린아이였다.”고 한다. 어른과 어린아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성장은 동심을 잃는 과이다.”(31쪽) 동심이 있고 없음의 차이다. 그렇다면 동심이란 무얼까. “마음으로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34쪽) 저자는 이 마음을 동심이라고 불렀다.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어릴 적 간직했던 꿈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죠. 꿈과 가치는 나이와는 상관없어요. 당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죠.”(44쪽)


만일 어떤 글에서 어릴 적 품었던 마음, 동심을 되찾으라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고. 한다면 다 아는 이야기를 쉽게도 한다며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할 거다. 그런데 어린왕자가 그린 그림1(모자처럼 생긴 그림)과 그림2(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구렁이)를 동심과 연결시키니 감동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어린왕자의 눈>>이 가진 매력이 여기에 있다. 어린왕자 속에서 동심, 자유, 책임, 고독, 길들여짐, 사랑, 죽음의 의미를 찾으니 익숙한 단어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저자는 생텍쥐페리보다 더 예리한 눈으로 <<어린왕자>>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왕자는 여우한테서 ‘길들여짐’의 의미를 배웠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며 길들여질 때 상대는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어린왕자의 별에 있었던 장미꽃이 지구에서 보았던 오천 송이의 장미꽃과 달랐던 점은 길들여져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어린왕자가 각 별에서 만났던 왕, 허영심에 빠진 사람, 술주정뱅이, 사업가, 가로등을 켜는 사람, 학자 들은 모두 길들여진다는 의미를 모른 채 홀로 고독하게 살았던 자들이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어린왕자>>의 의미를 깨닫고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고독에서 벗어나는 출구는 길들여짐에 있다...그런데 문제가 있다...우리가 원한다 하더라도 현대 사회의 어려운 국면을 돌파해내고 서로를 길들이는 데 마음을 쏟을 수 있을까?”(186쪽) 저자는 길들여짐이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음을 말한다. “사회 제도와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건강하고 공정한 환경 속에서 각자의 ‘사회성’을 키우고 공동체성을 회복시켜 함께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186쪽) 개인의 고민에서 사회적 고민으로 확대한다. 길들여짐은 정치적인 것. 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어린왕자의 눈>>을 한창 읽고 있을 때였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페이스북 친구의 글을 보게 되었다. 그 페친은 귀농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고 당장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 처지에 서글퍼하고 있었다. 이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꿈. 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책을 읽기 전과 읽고 있는 지금 너무 다르게 와닿고 있었기에 댓글을 달았다. “그 꿈 꼭 이루시길 바랄게요.” 그러자 “감사드립니다. 띄어쓰기 한 칸에도 갑자기 따뜻함이 밀려옵니다. 다시 감사드려여”하며 답글을 남기셨다. 글자 사이의 의미도 헤아리는 감수성이라니. 혼자 감동하며 슬그머니 웃었다. 어린왕자가 이루고픈 세상도 이런 따뜻한 세상이 아니었을까. 특별한 독자, 철학자의 눈을 빌려 읽은 <<어린왕자의 눈>>이 잠자던 감수성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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