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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한날의꿈 Feb 17. 2018

독특한 재미가 있는 초단편소설 읽기

<<회색인간>>, 김동식 지음, 요다 펴냄

페이스북과 블로그에서 입소문이 난 책이 있으니 김동식의 <<회색인간>>이다. 관심이 있던 차에 기획과 편집을 맡은 페친님께서 직접 책을 권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이야기에서 놀라운 반전을 본다. 세상은 핵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높은 벽 너머 단 한 곳만 인류 지성들이 모여 사는 낙원과 같은 곳이 있었다. 사람들은 위험, 배고픔, 어떤 어려움도 무릅쓰고 그 곳으로 가려고 한다. 어떤 소녀와 소년은 각각 사투를 벌이며 이 벽 앞까지 이르렀다. 벽 너머 사람들은 이 둘을 관찰하며 한 명만 그 곳으로 들이려고 한다. 소녀는 초코바 하나를, 소년은 통조림 하나를 갖고 있었다. 둘은 배가 몹시 고팠지만 상대에게 자신의 것을 뺏길까봐 선뜻 내놓고 먹지 못한다. 그러다 소녀가 초코바를 꺼내 소년과 나누어 먹는다. 그런데 벽 너머 지성인들은 결국 소년을 선택한다.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누었던 소녀는 왜 선택받지 못했을까? “소녀가 초코바를 먹고 어떻게 했습니까? 초코바 봉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버리지 않았습니까? 쓰레기를 무단투기하면 안 되지요.”(전자책 93쪽).

결말에서 ‘쿵’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았다. 베풂을 실천한 소녀의 선의는 사라지고 공중도덕을 어겼다는 딱지만 붙었다. <<회색인간>>을 읽다보면 결말에서 꼭 반전을 만나게 된다. 그 반전은 예상한 경로를 벗어나 엉뚱한 길에 다다라 있다. “아~” 감탄이 나오면서 이야기를 곱씹어 보게 된다. 짧은 이야기가 이토록 강렬할 수 있을까 싶다.

<444번 채널의 동굴인들>이야기에서 우리와 쏙 빼닮은 모습을 본다. TV채널 444번에서 동굴에 갇힌 50명의 사람들을 카메라로 찍어 리얼 다큐멘터리와 같은 방송을 방영한다. 동굴인들은 자신들이 카메라로 찍히는지 모른 채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사람들은 444번 채널에 열광한다. 사랑하고 죽고 편을 갈라 대립하고 식인까지 서슴없이 일어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그들을 구출해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새 죽고 죽이는 사이에 1명이 남게 되고 채널은 없어진다. “1년, 2년. 사람들은 더 이상 444번 채널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서 했던 서명들은 무슨 의미가 있던 건지. 그들을 위해 모았던 성금들은 어디에 쓰인 건지. 그들을 찾는다고 설립된 연구기관들은 뭘 하고 있는 건지...”(전자책 226쪽). 444번에 미쳐있던 사람들은 이제 555번 채널에 빠져든다.   

김동식이 쓰는 이야기는 영화로 치자면 SF,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 공포 쟝르와 비슷하다. 평범한 지구인들이 사는 모습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444번과 같은 채널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444번 채널에 열광하다가 555번에 빠져드는 모습은 어쩜 그렇게 우리 모습과 똑같은지 모른다. 실제로 이 부분을 읽다가 4년 전 ‘한 사건’이 떠올랐다. 이슈가 되는 어떤 것에 미치는게 유행처럼 번지다가 금세 식어버리고 잊어버리는 모습은 바로 우리 모습이었다.

단편보다 더 짧은 초단편, 주물 노동자인 작가, 인터넷에서 인기몰이를 한 이야기. 김동식의 <<회색인간>>을 수식하는 문구들은 많다. 그것들을 다 제쳐두고도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을 소설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허황되지 않으며 현실을 따끔하게 꼬집어 준다. 예상 못하는 길로 마구 들어서는 반전은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 무엇보다 독특하게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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