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지망생과 도덕적 해이

by 이경




글쓰기라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행위이다.


그래서 좀 재미난 것일 수도 있겠는데, 가령 뮤지션으로 치자면, 보통은 데뷔 때가 가장 신선하다. 전에 보지 못했던 사람이 나온 거니까. 그렇게 신선했던 신인 뮤지션은 세, 네 번째 앨범쯤 가면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그 후로는 나르시즘이나 매너리즘이나 이런저런 즘즘즘에 빠졌다가, 서서히 맛탱이가 가면서 말년에는 젊은 시절 만들었던 노래를 재탕 삼탕 사탕 고구마맛탕 맛있는데, 그렇게 탕탕탕 낙지탕탕이가 되어가듯 인기는 잘게 잘게 바스라지고 몸도 정신도 쪼그라들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는 거다.


반면 글쓰기라는 것은 어떠한가. 흔히 글쓰기에는 정년이 없다고들 하듯이 자판 두드릴 힘만 있으면 글쓰기 그까이꺼 그냥 개소리든 헛소리든 옥소리든 문소리는 연기를 잘하는데, 어쨌거나 할 수 있는 거니까, 초라하게 데뷔하였어도 말년에 뒤집기 한 판을 노릴 수도 있고, 데뷔는 화려했어도 갈수록 망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인 것이다.


물론 누구라도 탄탄대로 하이웨이 고속도로 자유로 하이패스 뛰뛰빵빵 달려라 달려 하고 싶겠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나는 글 쓸 때 항상 자신 없고, 불안하고, 아 이따구 글이 책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을 늘상 안고 사는데, 이럴 때 믿는 것은 역시 편집자의 안목이다.


내 글은 구릴지언정, 편집자의 안목을 믿는다. 한 마디로 나는 나를 믿지 못하지만, 나와 함께 하는 편집자들의 안목에는 기대게 되는 것이다. 혹여나 책이 잘 안되면, 아 그래, 내가, 쓰는, 글이, 그다지, 대중에게, 호소력이랄까, 매력이랄까, 그런 게, 없었구나, 하고서 쭈글쭈글 쪼글탱이가 되겠지만, 또 행여나 책이 잘 되면, 봐라봐라 이것 봐라, 역시 우리 편집자님 안목은 틀림없다,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내가 이렇게나 위선을 기본 베이스로다가 깔고 있는데 생각만큼 책이 막 엄청나게 잘 되는 건 또 아니니까, 위선을 떨 기회도 없고, 계속해서 쭈글쪼글탱이만 되고 있는 것이다.


으으으으으.


어쨌거나, 글쓰기는 자기 증명의 행위이다 보니까, 자꾸만 무언가 도전하게 된다. 책을 세 권 내니까능 인스타든 브런치든 온갖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더라도, 어머 작가님, 너무 재밌어욬ㅋㅋㅋ, 웃겨욬ㅋㅋㅋ 하고서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생겨났다. 그냥 이분들하고 얼쑤 아이 좋아하면서 우리끼리 희희덕 시시덕 김시덕 웃고 즐기면서 NK세포도 활성화시키고 그러면 좋으려만, 나는 예전부터 자기 증명을 위한 하나의 버릇이 있다.


원고를 꾸역꾸역 쓰다가, 계속해서 나의 글이 의심될 때, 나 지금 글 잘 쓰고 있나, 똑바로 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익명의 문학 게시판에 가서는 글을 툭툭 던져보는 것이다. 문학 게시판이라고 하나, 대부분은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 커뮤니티이고 나는 그곳에서 엣헴, 나는 말이지요, 투고로 책을 낸 사람인데 말이지요, 하면서 나도 모르게 잘난 척, 꼰대 짓도 하게 되고, 이놈들아 약 오르지, 하기도 하고, 그러면 커뮤니티에서는 너 이 새끼, 신춘문예 같은 정통적 방식으로 등단도 못한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sns 감성글이나 싸지르는 주제에, 하면서 덤벼들면, 아닌데 아닌데, 나 sns 감성글 쓰는 사람 아닌데, 하면서 투닥투닥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쿠 작가님, 누추한 이곳에 오셔서 이렇게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사람도 있고, 여하튼 이런저런 제각각의 일들이 생기곤 하는데, 며칠 전에는 대차게 악플을 다는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보통 악플에는 어떠한 사유가 있을진대, 그가 나에게 달았던 악플에는 이유는 없고 쌍욕만 박힌 것이다. 그는 아마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닐까 싶은데, 나에게 악플이라고 달았던 내용을 보자면 이런 게 있다.


'글 써서 한 달에 30만 원은 버냐?"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한 달 30만 원. 작가 지망생이 분명한 그는 아마도 글을 써서 한 달 30만 원 버는 게 굉장히 쉬운 일이라고,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을 한 것 같다. 어린놈의 생키가 감히 출판업과 글쟁이를 너무나 과대평가하고 있구나. 헤헤헤. 역시나 세상 물정 모르는 이가 틀림없으렷다.


글을 써서 한 달에 30만 원을 벌려면 15,000원짜리 책을 200권을 팔아야 한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온갖 주접을 떨어가며, 아이쿠 미래의 독자님들, 제 책이 정말 재미있습니다요, 꼭 저의 글솜씨를 기대하시기보다는, 제 편집자님의 안목을 믿고서 한 번 읽어 주시지요, 굽신굽신, 굽실굽실하여도 한 달 200권은 쉽지 않은 숫자인 것이다.


악플러,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출판업과 글쟁이를 과대평가하지 말고, 앞으로는 글쟁이에게 돈벌이 관련하여 악플을 달 거면 '글 써서 한 달에 3만 원은 버냐' 정도로 금액을 더 낮추어 댓글을 달으라고 일러주었다.


으으으으으.


여하튼 오랜만에 대차게 들어오는 악플을 받으니까 잠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러면서 글에는 무릇 한 개인의 인격이 들어가곤 하는데, 나에게 악플을 달았던 친구는 인격적 소양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렇게 글 쓰니까 나 너무 꼰대 같네. 깔깔깔깔깔.


글을 쓰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악마 한 마리씩이 있는 응큼한 존재들. 그 악마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이들은 재미난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그 악마에게 잠식되어 인간 자체가 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이제 약을 먹어야 하는데, 내게 악플을 달았던 친구는 아마도 약 먹을 시간을 잊은 게 아닐까 싶다. (이 글을 보시는 다른 글쓴이 분들도 약은 잊지 말고 제시간에 꼭 드시길 바랍니다. 네네.)


오래전에는 '작가'라고 하면, 살인만 저지르지 않으면 어느 정도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는 구석도 있었던 것 같다. 당장 '작가'만 아니었으면 동네 개망나니나 양아치, 변태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인물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안 떠오르면 말구요. 저는 제임스 조이스가 떠오르는데요. 그 왜 <율리시스> 썼던. 제임스 조이스가 아내 노라에게 쓴 편지 보셨나요? 그게 참. 뭐랄까. 여하튼, 성격이나 사생활이 암만 개똥망 허섭스레기 같은 수준이어도, 글만 잘 쓰면, 어 뭐 저 사람은 작가니까 그러려니 이러려니 넘어갔던 시대가 있던 것이다.


반면 요즘에는 어떤가. 변했다. 무엇이? 시대가. 시대가 변하여 암만 글을 잘 쓰고 어쩌고는 차치하고서 도덕적 해이, 이걸 좀 유식한 말로는 모랄 해저드(Moral Hazard)라고 하는가, 내가 모랄 해저드는 몰라도 축구 선수 아당 아자르(Eden Hazard)는 좋아하는데. 여튼 도덕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싶으면, 가령 학창 시절 괜히 친구들을 괴롭히고 뚜드려 패고 왕따 시키고 하였던 게 밝혀진다거나, 하면 그날로 그냥 작가 인생은 끝 끝, 종지부, 디엔드, 마침표를 찍게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미 연예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떠난 이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학창 시절부터 늘 구석자리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동그라미 그리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던 아웃사이더 무명 글쟁이 이경은 떳떳한 것이다. 헤헤헤헤헤.


누구라도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면, 나는 진심은 그게 아니더라도, 겉으로 위선을 떨며 "아, 네, 뭐, 잘 되실 겁니다, 응원할게요." 하고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물론 말하지 못한 진심으로는, 나보다 잘 쓰면 질투가 나고... 으으으... 나보다 못쓰면 짜증이 나니까... 으으으... 그냥 글. 그거. 쓰지. 마세욧. 물론. 저는. 계속. 쓰겠습니다만. 하는 마음인데, 깔깔깔깔.


누구라도 작가가 되기 전에 하나의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점점 더,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는 사람은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될 터이니, 다들 마음속에 있는 악마를 조심조심 잘 키우며, 약 먹을 시간이 되면 약도 좀 잘 챙겨 먹고. 네?



한 줄 요약 - 차카게 살자.

한 줄 더 - 글 써서 한 달 30만 원 벌기 힘든데영. 도와주세요. 네?

한 줄 더 - 나한테 악플 단 어린 노무 생키를 생각하면 으으으으... ㅋㅋㅋ

한 줄 더 - 아, 이제 익명 게시판에 가서는 글 쓰지 말까... 후우...


하지만 이렇게 요약을 해도 여러분들은 제임스 조이스가 아내에게 쓴 편지를 검색하러 가겠지요.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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