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방위산업체 대체복무로 구로공단 공장에 다닐 적, 내 상관은 왕씨 성을 가진 과장이었는데, 행동 하나하나에 '나는 FM이야' 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꼼꼼하고 깐깐해서 같이 일하면 왕왕 숨 막히는 타입이었는데, 어쩜 성씨도 왕이야. 그래도 이 사람에게 잘 보여야 공장에서 안 짤리니까 아이고 왕과장님, 왕과장님 하며 굽실굽실했는데, 어느 날 왕 과장께서는 뭔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툭 뱉었다.
"나는 음주 운전하는 사람들 다 사형시켜야 된다고 생각해."
당시 막 스물이 넘었던 나는 음주운전은커녕 면허도 없었기 때문에, 저저 왕 과장 아무리 FM이라 해도 오바해서 말 심하게 하네, 음주운전으로 사형은 좀 심한 거 아닌가, 하고서 생각했다.
<싱어게인>에 한동근이 나오고, 본인 실수로 실업자가 되었네, 다시 노래를 하고 싶네, 어쩌네 저쩌네 이야기 나오니까 같이 방송 보던 와이팡이 "한동근, 뭐했어?" 물어본다.
"몰라, 음주 운전했을 걸?" 대답했는데, 와이팡에게 내 대답의 신뢰도는 대체로 낮기 때문에, 와이팡은 기사를 찾아보고서는 그제야 "음주운전 맞네"하며 질문의 답을 스스로 구하는 것입니다. 와이팡, 이럴 거면 나한테 왜 물어보는 겁니까...
오디션 출신 보컬 중에 '가창력'만 놓고 따지면 여성은 손승연, 남성은 한동근이 가장 대단하다. 둘 다 노래하는 걸 보고 있으면, '괴물'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압도적이다.
뮤지션이든 운동선수든 훌륭한 탈랜트를 가진 이가 외적으로 사고를 칠 때, 본업과 사생활을 분리시켜 보느냐 마느냐는 예전부터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제는 시간이 갈수록 이 둘을 분리시키지 않고, 일단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는 쪽으로 대세가 흐르는 것 같다.
(가끔 작가가 정치에 개입하면서 기존 팬 50%가 떨어져 나가고 이때도 작가의 글과 정치 성향을 분리시켜 봐야 하냐 마냐로 말들이 많은데... 이런 걸 생각하면 작가에게 정치개입이란 '사고' 같기도 하고.)
여하튼 한동근이 <싱어게인>으로 무대 복귀를 시도하자, 기사도 뜨고 여론의 반응도 좀 엇갈리고 뭐 그러는 거 같다. 사실 연예/스포츠 뉴스의 댓글을 못 보니까 여론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능. 연예는 몰라도 스포츠 뉴스 댓글은 좀 보고 싶다.
한동근 얘기는 아니고, 지금까지 밝혀진 사생활이 너무나 개똥망, 개차반이고,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아티스트의 예술적 능력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자꾸만 이걸 분리해서 보게 되는 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알 켈리다. 알앤비 좋아하는 사람이 알 켈리의 음악을 피해 듣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고.
뭐, 알 켈리 얘기는 여기까지.
과거 음주운전으로 포승줄에 묶이기까지 했던 농구인이 각종 예능에 나오고는 보면, 형평성 운운하며 한동근 쉴드를 쳐주고 싶지만, 20년 전 왕 과장처럼 '음주운전'을 최악의 범죄로 여기는 이도 있을 테니, 역시나 뭐라고 떠들어대기엔 조심스럽다.
그냥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팬들 생각해서 사고 좀 치지 말고 각자 행동거지를 조심히 하는 게 가장 좋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20년 전 왕과장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사이 면허를 따고 나름 무사고로 운전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음주운전자 사형시켜야 한다는 의견에는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다. 그래도 세상 대부분의 나쁜 일은 술 때문에 일어난다는 말도 있으니, 결론은 다들 연말연시 술조심, 음주운전 조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