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알이 꼴릴 때

by 이경
신득녕.jpg 마영신 <연결과 흐름>


최근 본 만화책 중에 가장 좋았던 한 컷. 마영신 작가의 <연결과 흐름>의 한 장면. 나는 색안경 끼고 책을 보는 일은 많이 없는데, 배알은 자주 꼴린다. 으으으, 저 사람 책 나보다 잘 나가네, 으으으으, 뭐 이러면서. ㅋㅋ


다음 책에 '문인상경'과 관련된 한 꼭지를 써두었는데, 글 쓰는 사람들의 본성이랄까,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한 사자성어가 아닌가 싶다능. (문인상경 = 글쟁이들은 서로 경멸한다는 뜻으로 동료의 글솜씨를 과소평가하는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나 같은 쪼랩 글쟁이도 문인상경은 행해야 하므로, 우에 해서든 다른 작가 선생님들의 글을 흠잡아 과소평가, 평가절하, 해야 할 텐데,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역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의 흠을 꼬집는 것이다.


어제는 이미 책을 여러 권 낸 작가 선생님 한 분의 글을 읽었는데, '예요'와 '이에요'를 구분 못하는 걸 보면서, 아코아코, 이분 이분 책을 이렇게나 여럿 냈으면서, 글도 그렇게 잘 쓰시면서, 여지껏 예요와 이에요를 구분하지 못하고 계시는구나, 하면서 속으로 헤헤헤 나는 구분할 줄 아는뎅, 우헤헤헤헤헤, 하면서 꼴린 배알을 조금씩 풀어헤치는 것이다.


다음에 나올 책엔 이 '예요'와 '이에요'의 구분에 대한 문장도 한 줄 써두었는데, 아 그러니까 대충 다음에 글쓰기와 관련된 책 나온다는 주접 광고입니다만.


그런데 '예요', '이에요'의 구분은 보통은 다들 잘하시고, 쪼랩 글쟁이가 고랩 작가님을 흠잡을 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의존명사' 띄어쓰기다. 이건 정말 수백만 부를 팔아 재낀 작가라도 제대로 띄어 쓰는 경우를 본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일부 초보 편집자들도 이 의존명사 띄어쓰기는 많이 틀려먹지 않나 싶을 정도인데, 그러니까 글쟁이에겐 아 이걸 뗄까, 말까, 뗄까, 뗄까아아아, 하는 어떤 거대한 선택의 장벽이 의존명사 앞에 있는 것 같다. 이 장벽을 깨부수면 이제 의존명사 띄어쓰기 마스터가 되는 것인데, 대부분은 이 장벽 앞에서 계란을 쥐고서 잠시 멈칫, 주춤, 어슬렁 거리다가, 아몰랑, 나는 뭐 이거 계란으로 바위 치는 거 같고 그냥 붙여 쓰는 게 괜찮은 것 같아, 그냥 놔두고 싶어, 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므로 역시 나보다 잘 나가는 글쟁이의 흠을 잡기엔 의존명사만 한 것이 없다. 누군가로 하여금 심한 질투심이 날 때 나는 그의 글에서 붙어있는 의존명사를 보면서, 봐라봐라, 이 봐라, 이거이거, 느그 서장 남천동, 아 이건 아이고, 붙였다 붙였네, 니니, 지금 의존명사 붙여 썼제? 쯔쯔쯔쯔, 혀를 차며, 마음껏 비웃어 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의존명사 띄어쓰기에 집착하는 것은, 의존명사를 보면서, 아, 의존명사 너 이생키 좀 나 같은 놈이로구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질 못하고, 다른 무엇이 있어야만 튀어나오는데, 그때도 다른 것들과는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멀뚱히 떨어져 지내는구나, 하는 어떠한 연민이랄까, 측은이랄까. 크흑, 그러니까 나는 꼬옥 의존명사 같은 놈이로구나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이야기를 제 데뷔작 <작가님? 작가님!>에 실었는데 말이죠. 아 그러니까는 이건 앞으로 나올 책과 데뷔작을 동시에 한번 알려보겠다 하는, 뭐 그렇고 그런, 뻔하디 뻔한, 홍보의 글이랄까.


'작가님, 저란 인간은 꼭 의존명사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경 - <작가님? 작가님!> 중에서.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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