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판과 되돌아올 수 없는 강

by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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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몇 개 건너는 일 같다. 계약서를 쓸 때나, 책 표지를 정할 때, 그리고 조판할 때가 그렇다. 뭐, 무르자면 얼마든지 무를 수야 있겠지만, 되돌아오려면 뭔가 좀 많이 피곤한 일 아닌가.


출판사와 계약하면 글쟁이를 보통 '갑'으로 표기하지만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는 무명의 나로서는 입장이 좀 달라, 늘 '을'의 느낌이다.


그래서 출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보세요, 보세요, 출판사 선생님들 이제 낙장불입입니다. 무조건 제 책을 내주셔야 합니다, 무르기 없음이다 이거예요, 알겠죠, 네? 하고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강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절정은 책 표지가 나올 때다. 이때는 내가 아무리 개똥망 같은 글을 썼다 하여도, 출판사에서 들인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출간은 기정사실. 이때가 되면 나는 비로소 아, 다음 책이 나오겠군, 또 한 차례 잘난 척을 할 수 있겠다, 다행이다, 엣헴 하는 안도감이 든다.


반면 출판사에서, 이보게 작가 양반, 조판할 거야, 그리 알아두라고, 하면 안도감이라기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사실 책을 준비하기 전에는 '조판'의 정확한 의미도 조금은 희미했는데, 이제 출판사에서 조판을 얘기하면 커다란 교정은 거의 다 끝을 내었고, 앞으로는 문장 수정의 가능 폭이 확 줄어듦을 안다.


그러니 출판사에서 조판을 한다고 하면 글쟁이 입장에서는 뭔가 협박의 느낌까지도 들곤 한다. 아아, 이제 건너올 수 없다. 이제 내 문장을 크게 고치는 것은 편집자에게도 디자이너에게도 커다란 민폐. 그야말로 글쟁이 입장에서는 아주 깊고 넓은, 되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너는 일처럼 느껴진다.


되돌아오기 힘든 것을 알기에 '조판'이라는 어감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뭔가 '조빵맹이' 같은 욕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 내가 이렇게나 저렴하다. 하지만 천성이 이러한들 무엇을 숨기랴. 출판사에서, '조판할 거야.' 하면 나는 겁이 덜덜, 식은땀이 빠작. "야, 작가야, 너 조빵맹이 한 대 맞기 전에 확인 잘하라고." 하는 최후의 통첩 느낌이랄까...


네 번째 책, 조판한답니다. 이제 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입니다. 영차영차. 건너건너. 뒤돌아보지 않는다.


네 번째 책은 진짜 잘난 척하려고 쓴 글이니까요. 책 나오면 제가 잘난 척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성원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이거예요. 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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