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 2년은 정말 행복했다.
그러니까, 머리 아프고 스트레스받고 초조함으로 가득했던 출판사 투고를 끝내고, 첫 책과 두 번째 책까지 연달아 계약하면서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첫 책은 그 자체로 꿈의 결실이었고, 두 번째는 아버지 전상서와도 같은 책이었다. 이 기간 가족이 모이면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케이크를 사서 초를 켜고 끄며 웃었다. 불을 켠 케이크 앞에서 아이들이 노래 부르면 눈앞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내 생일, 아내 생일, 형 생일, 형수님 생일, 아들 1호 생일, 아들 2호 생일, 조카 생일, 부모님 생신만 해도 1년에 여덟 날이다. (나와 아내는 생일이 같아서 한날로 쳤다.)
그렇게 한두 해는 정말 행복하게 흘렀다. 그건 정말, 유유히 흘렀다고 표현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서른 이후에는 별다른 꿈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서, 또 무언가 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여겨져서, 그렇게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아서, 힘들어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좋은 날들이었다.
삼십 대 후반 책을 한 번 써보라는 주변 권유에, 글을 쓰고 출판 계약을 맺기까지 걸린 시간 1년 반. 그 시간은 외롭고 괴로웠어도, 그래서 가끔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평생 다시 생기지 않을 것 같던 삶의 목표와 꿈이 생겨서 흔쾌히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까지, 돌이켜보면 모두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꿈을 꾸고, 꿈을 이루고, 가족이 모이면 웃고 떠드는 시간, 영원할 순 없어도 오래도록 흘렀으면 하는 시간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흐름이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유유히 흐르기만 할 것 같던 날이 끝나고, 발목을 걷고는 전에 만나보지 못한 물길을 건너고 있다. 이 물길의 수심이 얼마나 깊을지 얼마나 길지 나는 알 수 없다.
사는 일은 왜 건너는 일일까.
사는 일은 왜 건너는 일일까.
그저 흐르기만 하면 안 될까.
먼 훗날, 올해를 떠올리면, 폴짝, 쉽게 잘 건넜다, 별 거 아니었다, 하고서 또 유유히 그렇게 행복하게 흐르는 날들이 오면 좋겠다. 백무산의 <강박>을 읽으며, 나만 건너고 있는 게 아니구나, 다들 그렇게 건너고 있구나 싶어서, 그렇게 몹쓸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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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의 어느 날 끄적인 글.
매년 새해가 되면, 아 올해는 시를 좀 읽어야지, 시집을 좀 읽어야지 하면서도 지키지 못한다. 작년에 유유 출판사에 나온 김이경의 <시의 문장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시를 읽었고, 적지 않은 위안을 얻었다.
설 연휴를 앞둔 오늘은 서점에 들러 시집 하나를 들고 와야지.
백무산 - <강박>
홍수에 불어난 강을 힘겹게 건너서는
뒤돌아보고 가슴 쓸어내린다
벌건 흙물 거친 물살 저리 긴 강을
내게도 지나온 세월 있어
지나오긴 했는지 몰라도
뒤돌아보이는 게 없는 건
아직도 쓸려가고 있는 것인가
내가 언제나 확인하고 확신하는 이 몸짓은
떠내려가면서 허우적이는 발버둥인가
내게는 도무지 사는 일이 왜
건너는 일일까
한 시대를 잘못 꿈꾼 자의 강박일까
삶은 해결해야 할 그 무엇일까
이 생의 건너에는 무슨 땅이 나올까
많이도 쓸려왔을 터인데 돌아보면,
어째 또 맨 그 자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