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 자서전, 평전 같은 책은 잘 안 보게 된다. 몇몇 뮤지션의 평전을 사서 보긴 하는데 그마저도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된 인물들의 평전이다. 제니스 조플린이나 김광석 같은.
아무래도 살아있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인물에 대한 글이 조금 더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아직 생존하고 있는 조영남의 자서전 비스무리한 책 <예스터데이>를 서점에서 들고 왔다.
이 글을 보는 사람에게 조영남이란 호불호가 갈리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조영남은 되게 특이한 포지션의 사람인데, 인간적으로는 그다지 정이 가지 않으면서도 다른 부분에서는 부러운 사람이랄까.
그러니까 한 20년 전이려나. 딴지일보에 실린 조영남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야, 이 아저씨 진짜 한량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웠다.
그리고 조영남은 예술 분야에 있어 엄청난 재능러였다. 약간 타고난 천재 타입이었달까. 부러웠다.
인터뷰에서 부친을 조모모씨, 모친을 김모모씨라고 부르는 걸 보면서, 조영남은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 사람이구나, 여러모로 자신을 제삼자의 눈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는구나 싶었다. 부러웠다.
이상이 조영남의 부러웠던 점.
그밖에 노래 잘하는 건 알겠지만 그게 취향에서 많이 벗어난다는 점. 너무 자기만의 세계에 있어 막무가내로 보일 수도 있고 그래서 예의라는 게 부족해 보인다는 점 등에서는 어쩐지 좀 정이 안 가는 부분이었다. 눈치 같은 걸 안보는 타입인지, 영원토록 철이 들지 않는 타입인지. 여하튼.
그러다가 작년 중앙일보에 실린 조영남의 글을 읽었는데 나훈아와 조용필에 대한 글이었다. 글에서 조영남은 나훈아를 가리켜 '훈아' 조용필을 가리켜 '용필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가요계에서 이들을 훈아, 용필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이제는 많이 남아있질 않다. 무엇보다 글이 생생하고 재밌었다. 이야, 조영남은 노래, 미술에 이어 글도 진짜 잘 쓰네 싶었다. 진짜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구나 싶었다.
당시 연재했던 글에 달렸던 댓글도 그다지 호의적이진 않았던 기억이다. 그때 조영남의 전처였던 윤여정이 오스카 상도 받고 워낙 잘 나가는 상태에서, 윤여정을 자꾸만 언급하는 조영남을 탓하는 댓글들이 많았던 기억이다.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왜 이런 사람의 글을 올리느냐 하는 댓글들이 많아서 대부분 악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하튼 그랬다.
그때 연재했던 글들이 묶여 책으로 나온 게 이 책인가 보다. 조영남 나이의(이제 78세 인가?) 사람이 옛이야기를 꺼내면 그 자체로 역사이야기이고, 평생을 예술업에 종사하며 한량 스타일로 지낸 조영남이다 보니 사건 하나하나가 재밌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글이 재밌다. 순서대로 안 보고 관심 있는 꼭지부터 보는데, 조영남이 최인호, 마광수에 대해 이야기한 꼭지도 재밌고.
조용필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는데, 조용필이 술을 그렇게 잘 마신다고. 함께 술 마시면 조영남은 이것저것 다른 이야기도 좀 하고 싶은데, 조용필은 밤새 음악 이야기만 하더라는 이야기. 역시 조용필은 순수 뮤지션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조영남은 한량 종합예술인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평소 가지고 있던 조영남에 대한 생각이 변하진 않을 것 같다. 아, 이 사람 좀 정은 안 가는데,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한량 스타일로 살아가는 건 진짜 부럽네 싶은. 무엇보다 내가 이 나이 되어서도 이렇게 유머를 발휘하며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부러운 생각까지 든다.
그리스에서 태어나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작가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는 77세가 되었을 때, 이제 더는 글을 쓸 수 없을 거라고 여기며 은퇴를 결심했다. 그 후에 여행을 떠나 다시 쓰는 사람이 되었고, <다시 쓸 수 있을까>라는 멋진 은퇴 번복 에세이를 써냈다. 조영남 역시 <예스터데이>의 프롤로그를 통해 이 책이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이게 참 엄살처럼 느껴진다.
책을 하나 내고 나면, 다시 쓸 수 있을까, 다시 책을 낼 수 있을까, 새하얀 백지를 다시 또 까맣게 채워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곧잘 들곤 하는데, 조영남이나 테오도르처럼 70대 후반의 나이에는 그 마음이 어떠할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흔히들 글쓰기는 정년이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몸과 마음 그중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행하기 어려운 것이 분명할 것이므로. 77세, 78세에도 아슬아슬한 유머를 펼치며(이 나이대의 유머가 보통 그렇다.) 멋진 글을 선보이는 조영남이나 테오도르 같은 이들을 보면서 나는 아직 갈길이 멀구나 싶어지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