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by 이경


“나 멀미나.”


주말,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하는데 앞좌석에 앉은 큰 아이가 말한다. 으이그, 촌스럽게, 누굴 닮아서 이렇게 차멀미를 하지, 하며 아이에게 농담을 건네다 생각해보니 날 닮았다. 지금의 아이 나이에 내가 꼭 이랬으니까.


어린 시절 차를 타고 먼 곳까지 이동할 때면 늘 키미테를 붙이고, 까만색 비닐봉지를 준비해야만 했다. 차멀미가 심했고, 언제 토하게 될지 몰랐으니까. 어느 날에는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탔다가, 시트를 더럽히는 바람에 기사님에게 고개를 숙이는 엄마의 모습을 봐야 했던 일도 있었다. 속상하고 화도 나고 힘들 만도 했을 텐데, 엄마는 단 한 번도 그 어린아이를 탓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IMF가 오기 전까지는 사는 재미가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집도 점점 넓어졌고, 차도 조금씩은 커졌다. 아버지의 차가 커지면서 차멀미가 사라진 건지, 내 몸이 커지면서 차멀미가 사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아버지의 차를 탈 때는 늘 그렇게 멀미에 대비해야만 했다.


멀미가 심하던 그 시절 아버지의 차는 조그마한 ‘르망’이었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다지만 8~90년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서울에서 할머니가 계신 대구까지 내려갈 때면, 그런 곤욕이 없었다. 할머니를 뵈러 가는 데까지 예닐곱 시간은 예사였고, 때로는 열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멀미를 이길 수 있는 노하우도 생겼는데, 그건 키미테도, 검은 봉지도 아닌 엄마의 무릎이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형이 앞자리에 앉아 운전하는 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주었을 때, 나는 뒷좌석에서 엄마의 무릎과 허벅지를 베고서는 아무 말도 없이 오랫동안 누워있었다. 그렇게 엄마 다리를 베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멀미가 나지 않았다.


어느 해였을까. 그때도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아버지 차 안이었을 거다. 엄마의 다리를 베고서 가만히 차창을 보고 있으니, 노을이 지는 붉은 하늘과 전신주, 그리고 멀리서는 시골의 풍경이 지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운전하는 시간에 종종 라디오를 켜놓곤 했는데, 그때 흐르던 음악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러니까 내 기억으로는 이때가 대중가요를 듣고서 처음으로 마음이 동하여 눈물이 나던 순간이다. 이때를 떠올리면 문득 엄마는 당신의 바지를 적시던 내 눈물을 알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어쩌면 엄마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내가 어딘가 아프거나 불편해하면 그걸 꼭 알아차리는 사람이라는 걸, 나이가 들고서 알게 되었다.


아내도, 아버지도 눈치 채지 못하고 지내는 나의 아픔을 엄마는 그렇게 알아준다. 지독한 차멀미에 시달리던 내게, 마치 당신의 다리가 특효약이라는 걸 알고서 몇 시간이고 내어주었던 것처럼, 아무리 꽁꽁 숨겨도 엄마에게는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라는 유대인의 속담을 믿기로 했다.


처음으로 내 유년의 감수성을 찔러 눈물이 나게 만들었던 그 음악은 원미연이 부른 <이별여행>이다. 1990년 원미연의 두 번째 앨범에 실린 곡으로 신재홍이 작곡하고, 김기호가 노랫말을 썼다. 이 곡이 나온 해에 내가 듣고서 눈물을 흘린 것이 맞다면, 내 나이 열 살,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꼭 지금 내 아이의 일이 분명하다.

왜 하필 그 어린 나이에 <이별여행>을 듣고서 눈물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독특한 원미연의 음색도, 조금은 서글프게 들리던 멜로디도, 엄마 다리에 누워 보던 차창 밖의 목가적인 풍경까지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별여행’이라는 단어와 노랫말에 마음이 동하였던 건 아니었을까.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여행’은 분명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곳으로 가서,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는 것이었다. 물론, 여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차멀미 같은 건 분명 괴로운 일이지만, 그럴 땐 언제든지 엄마의 다리를 베고 누우면 그만이니까. 그러니 이별과 여행이 어떻게 한데 묶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일어난 묘한 감정이 어린아이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건 아니었을까.


오랜 세월 가수와 또 방송인으로 활동한 원미연이지만 다른 곡에 비해 <이별여행>의 인기는 너무 컸고, 그 탓에 원미연은 <이별여행>으로 대표되는 원히트원더의 가수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원미연으로서는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어때. 누군가는 평생 이곡을 잊기 어려울 텐데. 들을 때마다 유년 시절의 엄마가 떠오르는 곡이라면, 한 사람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음악의 주인공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은 나이가 들어서도 ‘이별’과 ‘여행’이 잘 어울리는 단어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이런 사연으로 말미암아 앞으로도 <이별여행>을 들을 때마다 서글픈 마음이 들 것은 틀림없다. 아마 세월이 갈수록 작아지는 엄마의 몸을 볼 때마다 더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살면서 정말 하기 싫은 여행이 있다면, 그건 이별 여행이 분명하겠지. 무엇보다 가족과의 이별은 특히나 더. 가끔 가족이, 그중에서도 엄마가 없는 삶을 상상하면, 그 상상만으로도 너무 힘겨울 때가 있다. 내가 아파할 때, 누구보다 빨리 나의 아픔을 알아주고, 멀미에 시달리던 나에게 당신의 다리를 내어주던 사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


조그맣던 아버지의 르망은 커지고, 차멀미에 시달리던 아이는 이제 훌쩍 자라서, 아버지가 그러했듯 운전을 한다.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이별여행>을 들을 때 떠오르는 감정과 풍경에는 변함이 없다. 마침 옆에는 날 닮아 멀미에 시달리는 아이가 있기도 하고.


*원미연의 <이별여행>은 2집 앨범에 실린 스튜디오 버전과 1991년에 나온 라이브 콘서트에 실린 버전이 있다. 두 버전 모두 추천한다.



이별여행.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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