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NS에서 게시물 하나를 봤는데, 80년대의 2~30대와 지금 2~30대의 얼굴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결론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청결에 신경 쓰고, 먹을 것도 좋아지고, 의학도 발달하고, 평균 수명이 올라서 같은 나이더라도 예전에 비해 지금 사람들이 더 젊어 보인다는 것.
이게 실감 나는 게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다. 사람들은 무던히도 자기의 나이대를 노래한 음악을 찾아 듣고는 하는데, 나이를 언급한 옛 노래를 들으면 요즘의 세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령,
십 대, 이십 대 청춘에는 불타오르는 청춘가를 따라 부르다가도,
서른 가까이 되면 으레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를 듣고,
또 마흔이 되면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을 들어야 할 것 같고,
진환갑이 가까워서는 이장희의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혹은,
김목경이 부른 <어느 육십 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훔쳐야 할 것 같다가도 막상 곡 앞에 붙은 숫자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쏙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곡들이 발표된 지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탓이다. 김광석이 노래하던 서른과 지금의 서른이 같을 수 없고, 양희은이 노래한 마흔과 지금의 마흔도 사뭇 달라 보인다. 젊은 시절, 육십하고 하나일 때를 상상하며 노래한 이장희는 이미 70을 훌쩍 넘어 80을 바라보고 있고, 김목경이 노래한 육십 대 노부부의 모습은 요즘으로 치면 팔십 대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다들 지금의 곡 제목에 숫자 20 정도를 더 올려서 새로 노래하라고 하고 싶다. 광석이 형, 일어나.
한때 비틀스(Bealtes)의 음악 중 가장 서글픈 음악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 나이 64세에도 변치 않고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느냐고 발랄하게 묻는 <When I'm 64>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존 레논은 64세는커녕 마흔의 나이에 생을 달리했고, 내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나머지 멤버들은 정말 부지런히 64세를 향해 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직 생존하고 있는 링고 스타는 82세, 폴 메카트니는 80세가 되었다. 둘이서라도 <When i'm 100>이나 <오블라디 오블라다 백세시대> 같은 제목으로 곡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음악의 감성은 대체로 서글프지만, 숫자의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가 히트한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