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전에 올렸던 글인데, 출간하면서 조금 수정된 내용이 있을 테고, 전에 보셨다 하더라도 기억이 안 나실 테니까 재미삼아 봐주세요. 네네.
<밸런스 게임과 비주류 인생>
앞서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이상한 족속인가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정서적으로 늘 불안하며, 사회성은 대체로 낮고, 문인상경의 마음으로 질투심이 가득 차서는, 악마와도 같은 구석이 있는, 그야말로 이상한 족속들이라고요. 이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까 하는데 말이죠.
어느 주말,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운전을 하는데 첫째 녀석이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이 초등학생 아이 주변에서도 유행인 것 같았어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 밸런스 게임에 익숙해져있지 않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하는 질문이겠죠.
글을 쓰는 행위는 자만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자신감이 있어야만 하는 슈퍼밸런스 게임인데, 글쟁이는 대체로 으으으, 내가 쓰는 글은 너무 구려서 견딜 수가 없다, 하는 ‘내 글 구려병’과 사람들은 나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 나는 너네들과는 분명 다른 존재이니까, 하는 ‘작가병’ 사이를 수시로 오가기 때문에 보통은 늘 밸런스가 무너져 있습니다. 휘청휘청.
특히나 신춘문예 같은 공모전이 있는 시즌에는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고, 자신감이 바닥에 가 닿아있는 많은 이들을 볼 수 있어서, 모르긴 몰라도 심리학자들이 극단적 인간의 양면을 연구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즌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성격상, ‘작가병’에 걸리는 날은 드물고, 보통은 ‘내 글 구려병’에 걸려서 허우적거리곤 합니다. 안하무인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작가병’보다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반성하며 발전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려있는 ‘내 글 구려병’이 악성도에서는 덜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밸런스 한쪽이 자신 없음으로 치우쳐있는 상황에서 자기연민이라는 감정 덩어리까지 더해지면 삶 자체가 몹시 우울해지는데, 저는 종종 이 우울함을 SNS에 농담처럼 뱉어내곤 합니다. 그러니까 SNS에서 시답잖은 농담을 자주 하면, 진담을 얘기할 때도 사람들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주어서 좋습니다. 저는 다른 일로는 자기연민이 발동하지 않다가도 책이 안 팔린다고 느껴질 때면 과한 자기연민에 빠져 드는데 말이죠. 그럴 때 농담처럼 SNS에 글을 쓰곤 하는 겁니다.
아아, 내 책은 안 팔리는 거 같은데, 다른 누군가의 책은 되게 잘 팔리는 것 같더라, 그 모습을 보니 배가 너무 아프더라, 내가 보기에 내 책이 꿀리는 게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제기랄, 북스타그래머며, 책스타그래머며, 무슨무슨 어쩌고저쩌고 인플루언서 그래머들이 내 책 읽고서 주변에 입소문 많이 내주었으면, 주절주절, 중얼중얼, 블라블라, 궁시렁궁시렁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저저, 무명 글쟁이 이경 저놈 또 시답잖은 농담하고 있구나, 싶을 텐데, 사실은 그게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답답하고, 억울하고, 현기증 나고, 남들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배가 아프고,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면서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찌질한 자기연민을 버리려면 책이 잘 팔리는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저는 비주류다 보니까 책이 팍팍 팔리진 않는 것 같아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 자기는 문단文壇의 아웃사이더인 것처럼 생각한다고 말이죠.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은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다들 문단의 중심에 있으면서 아웃사이더인 척 하기는, 아휴 재수 없어, 낄낄낄, 하면서 말이죠.
저야말로 문단이란 게 실재한다면 그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 가끔 까치발 들고서, 눈만 빼꼼 내밀고는, 누가 나 좀 안 불러주나, 힐끔힐끔 눈치 보다가, 아아 이거 진짜 찌질하다, 글 쓴다는 놈이 이렇게 남들 눈치나 보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하면서 까치발을 내리고는, 고개 한번 떨구고는, 문단이고 나발이고 묵묵히 독고다이 나의 길을 걸어갈 테야, 하고 있는 아웃사이더 중에 아웃사이더 아닌가 싶은 거죠. 낄낄낄.
이 책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 나는 몸과 마음의 밸런스가 늘 무너져있고, 자존심, 자만심, 자존감 뭐 하나 제대로 중심을 잡질 못한 채 비틀비틀, 뭔가 주류 세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하는 마음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문인’이자 ‘작가’가 될 기질이 충분합니다.
물론 주변에서 여러분을 볼 때면, 늘 좀 위태롭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볼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런 눈빛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 역시 어차피 글이나 쓰는 비주류 인생들일 텐데요, 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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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서평단을 모집하고... 기대평 댓글을 보고 있노라니, 이 책을 통해서 글쓰기를 더 잘하고 싶다, 글쓰기 팁을 배우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 에세이를 잘 써보고 싶다... 하는데 저는 이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나 책에 실어서, 독자들의 기대를 처참히 부서버리진 않을까, 오금이 저리는 중입니다.
요즘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있는데요. 소설 속 화자가 '여러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말투가 요즘말로 하면 굉장히, 몹시 킹받는 거예요. 아아 킹받네... 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근데 그 말투가 어디서 본 거 같다 생각했더니... 이번에 나올 제 책의 말투가 이렇게 '여러분'을 찾아가며 썼습니다. 역시나 독자들이 킹받을것 같아서 오금이 저립니다. 뭐 어찌 되든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