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무슨 라노벨 제목 같네... 글도 라노벨 스타일로 써볼까... 하지만 이경은 라노벨을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걸...
오늘은 H출판사 이야기 좀.
오늘 네 번째 책 저자 증정본을 받았다. 남들은 책 하나 내면 출판사 연락을 받아 잘도 책을 내던데, 나는 앞선 책 3종을 모두 출판사 투고로 내고, 네 번째가 되어서야 출판사의 연락을 받아 책 작업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브런치 공모전 응모를 목적으로 썼던 글인데, 출판사에서 "자네 공모전 떨어지면 그때 우리 출판사와 함께 하지 않겠는가?" 해서 나오게 된 책이다.
브런치 공모전에 보낼 첫 번째 글을 언제 썼는가 보면 작년 9월 말이다. 지금이 2월 말이니까, 첫 글 스타트하고서 5개월 만에 책이 나온 셈. 이렇게 급하게 빨리 후다닥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책이 나와도 되는 걸까, 싶은데 그만큼 제가 놀라운 글빨을 발휘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몰라요 몰라, 다른 사람들 보면 짜깁기로 사기 쳐서 책 만드는 인간도 세바시 같은데 나와서 엣헴 자고로 글이란 이렇게 쓰는 겁니다, 하면서 구역질 나게 잘난 척 떠들어대는데 나라고 잘난 척 못할쏘냐, 받아주세요, 저의 잘난 척.
암튼 네 번째 책을 내기 전까지는 허구한 날 투고 인생이었으니 원치 않게 이런저런 여러 출판사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개중 한동안 상대하고 싶지 않은 출판사와 편집자가 있었으니 바로 H출판사와 H출판사 출신의 편집자이다.
2019년 에세이 원고를 H출판사에 투고했을 때, H출판사에서는 반려도 채택도 아닌 아주 묘한 답장을 보내주었다. 내용인즉슨 문학 메일 담당자가 퇴사하였으니 원고 검토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3월 31일 접수 마감인 자기네들 문학상 공모전에 응모를 하라는 이야기였다. 이 메일이 도착한 날은 4월 30일. 잠깐만요 공모전 마감 접수는 3월 31일이라면서요? 11개월 후에나 열릴 공모전에 글을 보내라고? 그때까지 저는 손가락을 빨고 있으면 될까요...
밖에서 바라보는 H출판사의 이미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매년 자기네들 이름을 딴 문학상까지 여는 H출판사의 규모는 작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투고 원고를 이렇게 대한다고? 심지어 내가 보낸 원고는 소설도 아닌 에세이였는데.
뭐, 그럼에도 이해한다. 출판사의 이직률이라는 게 워낙 높다고 들었으니. 담당자가 없으면 검토가 어려운 게 당연하겠지. 투고자의 애절한 마음 따위 신경 쓰지 않고서, 11개월 후에 열릴 공모전에 글을 보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정작 내가 기분 나빴던 것은 답장 메일 말미의 인사말이었는데 바로,
'꾸벅'이라고 쓰여있었던 것이다. 꾸벅... 꾸벅??? 꾸벅!!!!!!
ㅋㅋㅋㅋㅋ 출판사로부터 수많은 반려 메일을 받아봤지만 이렇게 자유분방한 안녕의 인사말은 처음 접해서 나는 뭔가 좀 약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출판사의 방향과 맞지 않아 반려한다는, 일반적인 복사 붙여 넣기의 재미없는 메일이 아닌 뭔가 일탈감이 넘치는 단어 선택처럼 보였달까.
드립을 편하게 치는 친구 사이도 아니고, 출판사 공식 계정에서 보낸 답장 메일의 내용에 꾸벅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때 나는 투고자의 신분으로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덩어리져 있던 상태였다. 이거 너무 장난치는 거 아닌가...
그렇게 H출판사는 나에게 좀 묘한, 썩 좋지만은 않은 이미지의 출판사가 되었다. 그 후 나는 세 편의 원고를 투고하여 3종의 책을 출간했다. 투고 원고가 책이 되기 위해서 많은 편집자들은 저자의 인지도, 전문성, 트렌디함을 따진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무엇하나 해당사항이 없는 내용이다. 그러니 투고 메일함에서 오로지 글만 보고서 나를 선택해준 편집자들에겐 늘 고마움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투고를 소중히 여기는 편집자에게 자연스레 정이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에서 한 편집자의 글을 읽었다. 작가 지망생에게 출간 팁을 전하는 글이었는데, 이런저런 주장 중에 하나가 출판사에 투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투고로 책을 내기는 너무 힘들기도 하고, 편집자들은 이 업무를 싫어하며, 차라리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곳에서 인기를 끄는 편이 더 좋다는 주장이었다.
책을 목표로 하는 작가 지망생에게 투고를 하지 말라는 편집자라니. 그는 H출판사 출신의 편집자로 1인 출판사를 준비하는 듯했다. 모든 편집자가 투고 원고를 소중히 대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렇게 작가 지망생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편집자가 좋은 편집자인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서는 투고 원고 900건 중 하나 정도가 책이 된다고 했다. 0.1%의 확률. 나는 그 0.1%의 확률을 바라보며 투고를 했다. 투고 원고가 책이 되기 어렵다는 것은 투고자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 낮은 확률을 받아줄 편집자를 기다리는 것뿐.
투고를 하지 말라는 편집자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말에는 해도 될 말, 해서는 안 될 말, 꼭 해야 할 말,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 있는데 희한하게 H출판사 출신의 편집자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자주 뱉는 듯했다. 언론사를 끼고 있는 출판사라 그런가?
절정은 세 번째 책 <난생처음 내 책>의 원고를 투고했을 때 일어났다. 당시 나는 두 번째 책의 원고가 계약되어 있는 상태에서, 어쩌면 이게 내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서둘러 다음 책을 계약하고 싶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내 책>의 원고를 투고했는데 출판사의 반응들이 나쁘지 않았다. 한 곳의 편집장은 결과적으로 반려였지만, 공저로 책을 내보자는 의견을 주기도 했고, 두 곳의 출판사에서는 계약을 하자고 답을 주었으니까.
나는 <난생처음 내 책>의 원고를 투고할 때에 사정을 밝히기도 했다. 두 번째 책이 계약되어 있지만, 다음 책을 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세 번째 책의 원고를 투고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스무 곳의 출판사 중 한 출판사는 반려의 뜻을 전하며 이런 답장을 주었다. 계약을 많이 해놓는 것보다는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여가는 게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물론 나의 생각이니 무시해도 좋다고.
아니, 지금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가려고 세 번째 원고를 투고하는 거 아닙니까.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이쯤 되면 모두가 예상되겠지만 이런 답변을 준 출판사 대표 역시 H출판사 출신이었다.
진지하게 H출판사 출신의 편집자들은 투고자들 기를 꺾는 훈련을 받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동등한 위치가 아닌 투고자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 진짜 재수 없어.
외에도 종종 H출판사 혹은 출신의 편집자들이 말실수를 해서 구설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문제의 발언들은 언제나 하지 않아도 좋은 말들이었다. 역시나 언론사를 끼고 있는 출판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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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내용은 모두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H출판사는 여전히 괜찮고도 예쁜 책을 자주 낸다. 그런 H출판사의 책들을 볼 때 나는 부러 눈에 쌍심지를 켜고서는 오탈자가 나오면 SNS에 올려버려야지, 이것이 H출판사를 향한 나의 소심한 복수닷! 하는 유치한 짓거리를 하고 있지만.
투고자 시절에는 멘탈이 쉽게도 바스러지니까, 아무렇지 않은 멘트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던 게 분명하다. 역시 다시 생각해도 투고자 신분으로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덩어리 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H출판사 출신의 W편집자와 최근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왠지 H출판사 출신의 편집자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W편집자와는 친구가 되었을까.
2018년 책을 한 번 써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처음으로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음악 에세이였다. 음악 웹진에서 3년 정도 음악 에세이 형태의 글을 써왔으니까.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늦은 나이지만, 작가의 꿈을 가져봐도 좋지 않을까.
음악 에세이 원고를 투고하며 몇 번의 계약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책이 되진 못했다. 2018년에 투고했던 원고는 해를 넘기고도 지지부진했다. 그 무렵 같은 음악 웹진에서 글을 썼던 B작가의 에세이가 출간됐다. 그간 음악 관련 서적만 내오던 B의 첫 에세이집이었다.
B와 나는 같은 음악 웹진에서 글을 써왔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시기는 달라 서로 간의 친분은 없다. 나는 그런 B에게서 아마도 끔찍한 질투와 부러움을 느꼈던 게 아니었을까. 저 친구는 여러 권의 음악 책을 내고서, 이제는 에세이스트가 되었구나. 나는 여전히 투고자이고, 작가 지망생인데.
그러니까 내가 투고를 하고서 H출판사로부터 담당자가 없어서 검토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던 2019년, B작가는 H출판사에서 에세이를 냈으며, 그 책의 담당 편집자가 W였던 것이다.
고백하자면 그 후에 나는 음악 에세이 원고를 투고하면서 출간 기획서의 유사 도서 목록에 B작가의 에세이 책을 집어넣기도 했다.
나도 이런 책 쓸 수 있는데.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B작가의 글솜씨가 아니라, W 같은 편집자라고 생각했다.
투고자는 그렇게 편집자의 손길을 필요로 하니까.
내 글을 알아봐 줄 사람을 필요로 하니까.
출판 업계가 좁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인연은 묘하게도 돌아간다. 우연찮게 B작가의 에세이를 담당한 W편집자와 온라인 친구가 되었는데, W는 나의 이런 속사정을 알 수 없었겠지. H출판사에 대한 애증과 질투와 짜증과 시기와 부러움과 기타 등등의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오묘한 감정을.
내가 투고했던 원고의 출간 기획서 유사 도서 목록에는 자신이 만든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출판사로부터 네 번째 책의 저자 증정본이 도착하고 W에게 연락을 했다. 편집자님, 제가 친구가 없어서 저자 증정본을 다 소진 못해요. 괜찮으시면 제 책 한번 읽어보실래요? W는 흔쾌히 책을 받아본다고 했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H출판사에 대한 악감이 사리지는 기분이다. 유치하게 품어왔던 B작가에 대한 질투심도. 그런데 나에게 '꾸벅' 하고서 답장을 준 편집자가 설마 W는 아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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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로만 책을 내다가 처음으로 출판사의 컨택으로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H출판사의 디스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책 홍보 게시물이에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