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미팅 장소에 도착한 편집자L 님과 저는 작가님의 시선을 저희에게로만 가두기 위해 벽 쪽에 붙어 앉았습니다 (아님)
첫 만남에서, 계약서도 쓰기 전, 저희가 작가님께 진심을 다해 드렸던 말씀이 있습니다.
"작가님. 저희는 베스트셀러 못 만들어드려요.
그리고 전국 모든 서점에 작가님 책 깔아드릴 수도 없고요."
(즉, 저희는 적어도 사기꾼은 아니라는...)
이 말을 듣고 작가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 사람들은 지금, 계약을 하자는 건가 싶으셨을까요.
아무튼, 저희는 그리고 이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치만 저희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만약 저희와 함께 하신다면 저희는 작가님 책을 최선을 다해 만들고 알릴 겁니다. 작은 출판사의 강점은 어느 하나 소외되는 책 없이 출간되는 모든 책에 전력을 쏟을 수 있다는 거거든요."
이경 작가님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브런치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저희의 손을 잡겠다고 말씀하셨죠.
(영업성공)
그때 저희의 솔직한 심정은 작가님이 브런치 공모전에 당선이 되셔서 더 큰 출판사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진심으로요.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편집자로서 작가님이 정말 크게크게더크게 잘 되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참 아쉽게도(감사하게도) 작가님께서 저희와 함께하게 된 것이지요. 네네.
저희는 저희와 함께하는 모든 작가님들께 똑같이 말합니다.
"저희는 베셀 못 만들어드려요."
그리고 또 똑같은 마음이기도 하고요.
'더 잘되셨으면...'
그래서 계약 전, 꼭 다른 출판사 계약 조건도 알아보시고
비교도 해보시고 더 큰 기회가 있는지도 한번 보시라고 말씀드리죠.
아니 이건 뭐 계약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제가 생각해도 참... ㅋㅋ
그런데
그럼에도
저희와 한 배를 타 주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흰 앞으로도 이런 마음으로 책을 만들 겁니다.
더 노력하는 마누스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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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자의 후기.
그, <작가의 목소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원래 책을 목표로 쓰기 시작한 글은 아니었고, 타이핑 연습 겸, 스트레스 해소 겸, 타이핑을 좀 와다다다다 해야만 했는데, 마침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출간 공모전을 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뭐 이왕 타이핑 연습할 거 공모전에 응모나 해보자, 되면 좋고, 아님 말라지, 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어째 공모전 마감일을 많이 앞두고도 필요한 꼭지수를 다 채워버렸단 말이죠. 근데 이거 쓰다 보니 같은 주제로 책 한 권 분량은 또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해보고 떨어지면 뭐 또 출판사 투고나 해보지, 하는 글을 sns에 남겼단 말입니다?
근데 다음날 마누스 출판사로부터 메시지가 온 거예요. 이봐 무명 글쟁이 이경, 자네가 브런치에 응모하려는 그 글을 지켜보고 있다, 공모전 떨어지면 우리와 함께 책을 내보내는 게 어떻겠는가.
그래서 저는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그도 그럴 게 저는 그간 앞선 책 세 종을 모두 출판사 투고로만 내왔던 터라,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 똑똑똑, 거기 편집자님 계십니까, 여기 무명의 글쟁이가 원고를 보내드리오니, 검토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하는 요청에 좀 지쳐있기도 했고 네 번째 책은 나도 출판사의 연락으로 시작해보고 싶다, 하는 열망 희망 갈망 소망 같은 게 있었단 말이에요?
그렇게 마누스의 마음을 알아두고서 한참 브런치에서 공모전 심사를 하는 기간에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드디어 저는 온라인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마누스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미팅 당일까지 출판사 대표님만 나와서 일대일로 맞짱을 뜰 줄 알았는데, 미팅 당일에 편집자분까지 두 분이 나온다는 거예요. 아니, 저는 사회성이 낮아서 일대일 대화도 좀 어려워하는데 두 사람이나 상대를 하려니 미팅 전부터 극심한 피로가 밀려왔습니다. 으으읔.
어쨌든 미팅은 해야 하니까 카페 안에 들어갔는데 아니, 이 두 분이 글쎄 카페 구석에 등을 지고 앉아서는 저의 시선을 오로지 그 둘에게만 집중하도록 이미 세팅을 다 해놨더라 이겁니다? 제가 예전에 TV에서 상대방의 시선을 잡기 위해선 구석 안쪽에 앉아라 하는 FBI인지 CIA인지의 팁을 본 기억이 있는데요. 마누스에서 그걸 고대로 하더라 이거예요? 아아, 이 사람들 보통이 아니다, 어리다고 얕잡아보면 아니 되겠구나, 하며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는 자리에 앉았는데요.
이분들 하는 말이 글쎄, 어이어이 이경 우리는 자네가 진짜 잘되었으면 좋겠어, 브런치에 응모한 자네 글이 수상작으로 뽑혀서 우리보다 훨씬 큰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무명글쟁이 이경이 유명해지면 좋겠어, 하는 말을 하더란 말이에요? 그러면서 브런치 심사 중에 계약을 하는 건 좀 그럴 것 같으니 브런치 공모전 일정이 모두 끝나면 계약을 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더란 말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브런치에 응모한 글이 수상을 하면 박수를 치며 저를 응원할 테고, 떨어지면 그때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브런치 공모전에 떨어질 확률을 이미 99.89%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아 마누스 이 사람들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어쩌나 조마조마해하면서, 브런치 일정이야 어찌 되든 그냥 도장 콕 찍고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걸 또 너무 대놓고 드러내면 너무 없어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아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역시 브런치 공모전 일정이 모두 끝나고 계약을 하는 게 나을까요? 하는 가식을 떨었던 겁니다. 네네.
그러면서 마누스에서 하시는 말이, 저희는 베스트셀러 못 만들어드려요... 하시길래 저는 속으로, 저도 베스트셀러는 못써요...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랑말랑 하는데 이런 말도 역시 뱉으면 좀 없어 보일 것 같기도 해서, 그냥 웃어넘겼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이제 그런 건 있었습니다. 미팅 전에 마누스 대표님이 그동안 제가 냈던 책을 다 읽어주시고 제 글을 참 재밌어하시고 스스로 저의 팬임을 자처하시고 네?
그냥 아 이분 진짜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해 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졌달까요.
제가 작가 지망생 시절 한 편집자와 한 노작가의 일화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노작가의 글을 담당하게 된 편집자가 "선생님 원고를 볼 생각에 너무 떨립니다, 선생님 글을 너무 좋아합니다." 하는 이야기를 하자, 노작가께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편집자인 자네가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는 일화였단 말이죠.
저는 채찍을 처맞으면 아이고 아파라 아파서 못 일어나겠다, 하고서 아예 쓰러져버리지만, 당근을 주면 또 으쌰으쌰할 수 있는 성격인데요. 한마디로 당근 만을 원하는 한량이란 말이죠.
나는 절대 죽어도 노작가처럼 굴지 못한다. 편집자가 저자에게 대놓고 애정을 보여주고 응원을 해주면, 그러니까 이걸 우쭈쭈라고 하는데, 이 우쭈쭈를 받으면 저는 좀 힘을 내는 타입이랄까요.
근데 그 마누스와의 미팅 때 마누스 출판사 대표님이 시종일관 호달달달 떠시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내가 아무리 못생겨도 그렇지, 사람을 앞에다 두고 이렇게 부들부들 떨 일인가 싶었는데, 글쎄 그렇게 달달달달 떨면서 저에게 하시는 말이, "작가님, 스스로 글 잘 쓰는 거 아시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