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구글은 과거의 오늘이라며 사진을 보여준다. 1년 전 오늘이라며, 2년 전 오늘이라며, 3년, 4년, 5년 전 오늘이라며. 평일에 뭐 사진 찍을 일이 있나. 주로 주말에 가족이랑 외출했다가 아이들 사진이나 좀 찍고 하니까, 구글이 소환해주는 추억이란 것도 대개는 n년 전 주말의 아이들 사진이다.
오늘은 구글이 1년 전 오늘이라며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아 그래 작년 오늘엔 김포에 갔었구나, 수로에 띄어놓은 달빛 보트가 예쁘다고 해서 갔었지, 그때 아들 1호랑 오락실에 들르기도 했었지, 닭꼬치를 먹으려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대서 그만두었었지, 하고서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작년의 오늘에는 그렇게 아이들과 김포에 있었다. 구글이 소환하지 않더라도 2021년은 나에게 여러모로 좀 기억에 남을 해다. 어떤 일은 생생하게, 또 어떤 일은 희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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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고마운 분께서 <난생처음 내 책>의 리뷰를 올려주셨는데, 리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글을 쓸 수 있는 평정심이 부러웠다.' 하는 문장이었다.
실제 <난생처음 내 책>의 원고를 투고했을 때, 담당 편집자님도 "원고를 다 읽고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까 앞부분이 되게 침착하더라고요." 하는 이야기를 해주셨으니 리뷰를 남겨주신 분의 감상도 비슷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평온이나 평정심과는 거리가 먼, 늘 좀 번잡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인데, 그렇게 읽어주셨다고 하니 너무 감사했다. 왜냐하면 늘 그렇게 보이는 글을 쓰려고 노오력은 하니까.
<작가의 목소리>에서는 좀 주접을 떨어가며 또 잘난 척을 해가며 글을 썼지만, 죽을 때까지 추구하고자 하는 문체가 있다면 무조건 담백함이다. 너무 싱거워서 읽을 맛이 안 나네, 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늘 사사로운 감정은 글 속으로 파고 들어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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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택한 글쓰기 중 하나가 모두 말하지 않는 방식이다. 나는 모두 말하지 않는다. <난생처음 내 책>에도 썼지만, 슬픔을 이겨내고 담담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그때까지,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담백하게 쓸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당장에는 모두를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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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특히나 모두 말하지 않는 시간이 많았다. '길을 걷다가 멈추어서 울었다'라고 쓰더라도, 왜 울었는지에 대해서는 쓰지 않았다. 글을 읽고서 울음의 이유를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거기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왜 울었는지에 대해 쓰게 된다면 그때는 또 울어야 하니까. 그렇게 나는 모두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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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글을 쓸 때,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고, 정확하게 쓰라고 하지만, 그건 그저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들 만의 언어일 뿐, 나는 여전히 책이 아닌 SNS에서 떠들 때는 모두를 말하지 않는다. 평정심, 혹은 평정심 비슷한 게 생겨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린다.
2021년은 모두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많았던 해였다. 그래서 구글이 보여주는 작년의 오늘을 보고 있으면 아, 그래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서 떠올리게 된다. 어떤 것은 생생하게, 또 어떤 것은 희미하게.
이제는 시간이 흐르고 다시 또 담담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오는 것 같아서 조금씩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담담해지고 또 단단해지고 싶다. 삶도, 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