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내고 나서였나. 트위터에서 글을 하나 읽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한국 문학판은 신인 작가나 기성 작가들이 새로 책을 내면 서로 사서 읽어주고 팔아주는 소위 망한 판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공유가 꽤 많이 된 글이었는데, 저도 그런 분위기는 얼추 알고 있어서 십분 이해가 가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책을 준비하면서 합평 같은 걸 해본 적도 없고, 동료 작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주변에 몇 없이, 그저 사무실 구석에서 독고다이 스타일로 글을 써 와가지고 아, 진짜 구리다, 나는 다른 작가가 내 책 읽어주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관심 없으면 안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다 진짜로 첫 책이 나오고 시간이 흐르자 예비 작가나 저보다 앞서 책을 내신 분들이 책을 사서 봐주고, 그것도 모자라 서평까지 남겨주시면 내 심장은 두근두근 합이 네 근이 되고, 뭔가 마음에 빚을 진 것 마냥, 아 어쩌지, 나도 저분 책을 사서 봐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좀 고쳐먹고 내 책을 사서 봐주는 작가 분들이 계시면 언젠가는 그분들 책을 사서 완독하든 못하든 읽어봐야지, 하게 된 것입니다.
서로의 책을 사서 팔아주는 일. 이게 분명 망한 문학판의 방증은 맞는 거 같은데, 저나 제 책을 읽어주는 다른 작가 분이나 서로가 무명인 것은 매한가지라, 뭐 무명작가들이 서로의 책을 읽고 으쌰으쌰 어기여차, 우리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글을 써 봅시다, 우리 존재 파이팅! 하는 거면 괜찮지 않나 하는 심정이랄까요.
유명 작가들 책이야 나오면 자연스레 서점 매대에 올라가고, 판매도 쭉쭉 이어진다지만, 무명작가들은 어디 홍보할 구석도 마땅치 않으니 이런 응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름 없는 작가들이 서로 책 읽어주고, 누구라도 하나 유명해지면 또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네? 그렇게 하나둘 무명을 벗어나고, 네? 일단은 제가 제일 빨리 유명해지면 좋기는 하겠는데요.
아무튼 예로부터 우리에겐 품앗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무명작가들이 돈 만 원 정도 써서 서로의 책을 사서 봐주는 거, 비록 망한 판이라도 거기에는 어떠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거 분명 자기 위안이고 합리화인 거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제 책을 읽어주는 작가님들이 계시면 아, 일단 고마우니까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보기라도 보고, 재밌어 보인다 싶으면 사서도 보고 뭐 그러고 있는데… 이것도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시는 분들이나 해당하는 이야기겠습니다.
어느 작가가 아무리 제 책을 재밌게 보았다, 칭찬을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그가 자기계발서나 돈 버는 방법 따위의 성공담 가득한 책을 쓴 사람이라면 역시 저는 손이 잘 안 가고 만 달까요. 가끔 이런 책을 쓰시는 분들이 제 책이 재밌어 보인다고 얘기해주시면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렇다고 오로지 문학만이 최고다, 이런 건 아니고 자기계발서 안 보는 거야 장르 취향의 문제랄까. 가령 표지나 띠지에 저자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으면 저는 손이 잘 안 가고, 무엇보다 저한테는 계발할 무엇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요.
예를 들어 주식으로 부자 되기, 이런 책이 있다면 주식에 투자할 시드 머니가 있어야 책을 보든가 하지, 나는 개뿔 시드 머니 같은 거 없다, 이런 상황이라. 자기계발서나 돈 버는 방법의 책이 대체로 뭐 그렇지 않습니까. 부동산으로 부자 되기, 며칠 만에 책 쓰기,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뭐 이런 부럽지만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
그리고 무슨무슨 협회 같은 글쓰기 아카데미 출신의 책도 높은 확률로 손이 안 가는 게 사실입니다. 책이 새우깡도 아니고 손이 안 가는데, 간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뭐 그럼에도 글을 쓰는 분들이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시면 저는 아, 고맙다, 저분이 책을 내신다면 나도 한번 읽어봐야지 뭐 이러고 있기는 합니다만. 자기 합리화와 내가 싫어하는 책 이야기를 동시에 하려니, 어쩐지 글이 매우 두서없습니다, 지금.
한때, 그러니까 출판업계에 발을 담그기 전에는 책에 붙는 추천사가 아무런 사례 없이 순수하게 책을 미리 읽고 추천을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추천사에는 보통 사례가 따른다고 해서 살짝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누구는 고급 와인 한 병을, 누구는 이십만 원 정도를. 이렇게 사례에 적당한 크기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이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사례 없이 추천사를 써주시는 분들도 있기야 하겠지마는, 이제 추천사가 덕지덕지 붙은 책을 보면 아, 저 책의 추천사에는 얼마 정도가 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아무런 조건 없이 서로의 책을 사 봐주고 으쌰으쌰 하는 일은 뭐, 망한 판이라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원로 작가 강준희가 쓴 〈한고조〉라는 단편을 보면 책을 낸 소설가가 주변 지인들에게 책을 보내도 말 한 마디 없더라, 하는 한탄이 나오는데 주머니를 열어 책을 사서 읽어주고 감상 올려주는 주변 작가나 독자들은 진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책 읽어본 작가님들, 내 책 좀 읽어줘요. 왜 내 책은 안 읽어줍니까? 얼마나 재밌는데, 하는 징징거림은 시답잖은 농담일 뿐입니다. 제 책에 관심이 없는 작가들에게 아무리 책을 읽어달라고 매달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주변에서 글을 쓰고, 책을 내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특히 망한 문학판에 계신 분들이라면 다 잘돼서 다음 책도 힘내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제가 제일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뭐, 진담입니다만.
이경 <작가의 목소리> 中 (동료 작가와의 책 품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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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브런치에 올린 글 '알 수 없는 구독자의 마음'에 품앗이 이야기가 나와서 한 번 올려본다능.
https://brunch.co.kr/@mc2kh/517
글쟁이들끼리의 품앗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 생각이 있는데, 책에 썼듯이 서로의 책을 사서 읽어주고 응원해주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책이라는 건 그리 쉽게 팔리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근데 출간 전 글쟁이들끼리 모여서 서로서로 자화자찬하고 서로서로 네 글 좋네, 내 글 좋네 하는 게 글쟁이로서 도움이 될지는 여전의 회의적이다. 물론 여러분들이 제 글을 두고서, 아이고 작가님 글 너무 재밌고 좋네요, 칭찬해주신다면야 저는 또 환영합니다만, 깔깔깔.
그나저나 새 책 출간을 앞두고 이번에는 추천사를 좀 받아볼까 하는데, 알고 지내는 작가님들이 없어가지고오오오, 추천사 받을 사람도 없고오오오오오오오... 고독한 독고다이 인생이라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