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가 없는 이야기.
우리말로 쓰인 곡 중에서 가장 무섭고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가사의 곡은 이정선의 <거리>인데, 가사가 이렇다.
이정선 <거리>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을 듣는 사람은 없으니 아무도 듣지 않는 말들이 거리를 덮었네
웃음 짓는 얼굴은 많아도 마음 주는 사람은 없으니 아무도 받지 않는 웃음만이 거리를 덮었네
신을 믿는 사람은 많아도 사람을 믿는 사람은 없으니 서로를 믿지 않는 사람만이 거리를 덮었네
살면서 요 몇 년간 이정선의 <거리>를 떠올린 적이 두 번 있는데 한 번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서였다. 다들 마스크를 쓴 탓에 코와 입은 가린 채 눈만 드러난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거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출판 시장을 경험하면서였다. 이정선이 아주 오래전 노래한,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듣는 사람은 없다는 가사가 꼭 출판 시장을 노래하는 것 같았으니까.
2018년 출판사에 투고하면서 한 출판사 대표님과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분이 내게 해주신 많은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었는데, 그중엔 출판 시장의 기형적인 구조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1년에 나오는 책이 6만 종을 넘어섰다고. 하루에만 100종이 넘는 책이 나오는 세상. 책을 읽는 사람과 서점은 점점 줄어드는데 출판사와 책을 내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이상한 구조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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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페친 사이에서 한 문학평론가가 쓴 글이 입에 오르내려 찾아보았다. '독자보다 저자가 많은 시대'라는 글이었는데 희한하게 확대해석이 많이 되면서 까이는 중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탓하는 게 아니라, 남의 글은 읽지 않은 채 자신의 이야기만 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하면서도, 작금의 출판시장의 트렌드를 비판하면서, 출판에 앞서 작가적 고민을 좀 더 해봐라, 하는 글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글쓰기가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난가?' 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흠...
인터넷에 벌어지는 쌈박질의 대부분은 한 단어를 두고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벌어지게 되는데, 요즘에는 각자 생각하는 '작가'나 '저자', '글쟁이' 등등의 범위와 해석이 각각 달라서 이런 설왕설래가 오가는 게 아닐까 싶다. 꼭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책을 내려는 건지, 그게 꼭 나여야 하는 건지를 묻는 건,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좋은 질문임이 분명한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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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에도 트렌드라는 게 있어서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곤 한다. 한때는 여행 에세이가 불티나게 팔렸고, 한때는 위로나 힐링 같은 단어들이 잘 팔렸으며, 어느 해에는 퇴사를 다룬 책이 열풍이었다. 이런 트렌드는 누군가에겐 현 사회의 보편적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오리지날리티가 없는 아류들로 보일 수도 있겠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인기를 끌자 비슷한 구조로 제목을 지은 책이 쏟아져 나왔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가 히트하자 '하마터면'으로 시작해서 '뻔했다'로 끝나는 제목의 책들이 또 쏟아져 나왔다. 내 담당 편집자가 이런 제목을 제시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너무나 끔찍할 것 같다. 작가적, 혹은 편집자적 고민이 없는 이야기들의 범람은 몹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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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거의 매일 들어가서 신간을 체크한다. 알라딘 신간에는 '주목할만한 새 책'과 '새 책 모두보기'가 있는데 주로 보는 것은 '주목할만한 새 책'이다. 저자와 편집자가 협업을 이루어 나온 대부분의 기획출판물이 이쪽에 위치한다. 반면 자비출판이나 POD 출판, 힘없는 1인 출판사의 기획출판물은 '새 책 모두보기'에 위치해 하루만 지나도 대여섯 페이지씩 밀려나가게 된다.
한 자비 출판사나 POD 출판사에서 10 종 넘는 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정말 괜찮은 기획출판물이 제대로 알려질 기회도 가지지 못한 채 뒤로 밀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게 참 안타깝다. 드래곤볼 모으면 몇몇 자비출판사 없애달라고 기도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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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해력이라는 단어를 두고 말들이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 주고 책내는 것만 '자비출판'이라고 생각한다.
고액의 책 쓰기 수강료를 내고서 공저로 책을 내는 것 또한 자비출판이며,
1쇄 인세 주지 않겠다는 편집자와 책을 내는 것 또한 자비출판이며,
출간 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사야 한다고 말하는 출판사와 일하는 것 역시 자비출판과 다름이 없는데도.
책을 내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이용한 출판 사기꾼들의 범람. 진지하게 책 쓰기를 고민했다면 속지 않을 사기에 많은 이들이 속아 넘어간다.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헛된 열망. 지난 주말 페이스북에서 읽었던 문학평론가의 글은 그런 비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했다. 그럼에도 많은 글쓴이들이 "내가 글을 써도 될까." 하는 나약한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것 같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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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의 문학평론가는 가르침 없이 공감과 위로만을 던져주는 에세이를 탓했지만, 이런 출판 시장의 기형적인 구조는 에세이뿐 아니라 자기 계발서 분야에서도 일어난다고 믿는다. 한 책 쓰기 수업 선생께서는 "유명해져서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써서 유명해져야 합니다다아아아아아." 하는 개똥망 같은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책 쓰기를 종용한다.
책을 목적이 아닌, 개인의 명함으로 일삼는 행위.
읽히기 위한 책이 아닌, 자신을 드높이기 위한 책을 쓰는 일이 과연 옳은지 묻는 게시물이, 이상하게 오독되어 비판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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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사람들은 왜 책을 내려는 걸까. 제각각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왕이면 작가적 고민을 많이 하면서 꼭 기획출판 하라고 말하고 싶다. 책이라면 응당 읽어주는 이가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읽히지 않을 POD나 자비출판 하지 말고, 글 잘 써서 기획출판 하시길. 그리고 이런 다양한 고민과 이야기를 담은 저의 책 <작가의 목소리>도 읽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네네. 결론은 나는 계속 책 낼 거야아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