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느지막이 집에서 나와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실었다. 회현역 SK건물 뒤쪽에 위치한 '피크닉'이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인지, 문화복합공간인지, 복합공간문화인지 하는 뭐 그런 곳에 들러 얼마나 복합적으로다가 이루어져 있는 공간인지 보려고 했던 것인데, 하필이면 전시 준비 기간이라 이렇다 할 복합의 문화라 할 것은 그닥 경험하지 못한 채 젊은이들 사이에 어설프게 끼어서는 커피나 한잔 마시고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고서는 이쪽 동네나 한 바퀴 둘러보고, 사우스게이트마켓 aka 남대문시장에 가서 밥이나 처묵처묵하자 해서 정처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발걸음을 떼었는데, 스틸북스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 회현 스틸북스가 이곳에 있었던가. 건물은 6층짜리였는데 1, 2, 3층은 스틸북스였고 5, 6층은 개방이 안된 상태였으며, 4층은 스틸북스와는 별개의, 뭐라더라, BKJN SHOP 인가하는 곳이었는데, 역시나 책을 파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4층 BKJN에 들어섰더니, 내가 평생 길러도 결코 가닿지 못할 만큼의 산적 수염을 기른 남성이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이곳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음, 뭐 알고 온 것은 아니고, 걷다 보니 우연히 눈에 들어와 들르게 되었다고 사실대로 말하자 수염남은 더욱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시다면 이곳 소개를 좀 해드려도 좋을까요?"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아니요, 괜찮지 않습니다, 설명 안 해주셔도 좋아요." 하는 드립을 쳐볼까도 했지만, 나라는 인간은 온라인과는 다르게 오프라인에서는 농담을 던져도 그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몹시 애매하고도 모호한, 한 마디로 말하는 것이 영 어설프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간 말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이 수염 난 청춘은 그 얼마나 무안할 것이며, 여하튼 그렇게 복합적인 사정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공간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는 책도 팔고, 전구도 팔고, 양말도 팔고 뭐 이것저것 파는 곳이었는데, 특히나 펭귄북스나 민음사의 무슨무슨 시리즈책이 연상될 정도로 단순한 콘셉트의 표지 책들이 서재에 가득했다. 그 서재 앞에서 수염남이 말하길,
"혹시 북저널리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희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주제들을 선정해 북저널리즘이라는 타이틀로 책을 내고 있는데요,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종에서 세 종까지 책으로 내고 있는..."
하는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아, 그러니까능 지금 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을 진열하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고픈 말이 불쑥 생겨나버리는 것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선생님. 북저널리즘이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멋지군요.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것이야 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 행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이 책과 출판사 이야기를 하셔서 말이지요, 실은 저도 글을 쓰고 또 기회가 생기면 책도 내고 하는, 뭐랄까, 그... 작가라고 불리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여하튼 그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하핫, 네네 그렇습니다 선생님, 제가 작가예요, 네네, 얼마 전에는 <그 노래가 내게 고백하라고 말했다>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음악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하였습니다만... 하면서, 이 수염이 가득한 남성에게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다 하는 나의 자아와 정체를 밝힘으로써, 잘난 척을 하고서 오지랖을 몹시도 떨고 싶다는 그 참기 힘든 욕구를 억눌러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