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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May 16. 2023

브런치 작가란 무엇인가



브런치에 올라오는 이런저런 글을 읽다 보니, 그냥 자기 이야기 술술 써 내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꼭 인사를 하고서 글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는 걸 보았다. 재밌는 건 이 '인사'의 대상에서 시작하는데, 보통은 '구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시작하는데 간혹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글이 있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님들 안녕하세요.'


이거 좀 재밌지 않나.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브런치 작가(브런치에서 글쓰기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만 읽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 권한이 없는 사람이나 일반 독자들도 있을 텐데, 글의 독자를 굳이 브런치 작가로만 한정 지어 글을 시작한다는 게. 물론 별 뜻 없이 시작한 글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자신의 독자를 '브런치 작가'로만 상정하여 글을 쓰는 게 재밌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어쩌면 이곳의 독자를 '브런치 작가'로만 한정 짓고 상정하여 글을 쓰는 게 꼭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래전부터 느껴왔지만 이곳 브런치는 쓰는 이들을 위한 플랫폼이지, 읽는 이들을 위한 플랫폼은 아닌 것 같으니까.



브런치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면 작가지, 브런치 작가라니. 방송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처럼 직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실 굉장히 애매하고 모호하고 생각에 따라서는 병맛까지 나는 단어 아닌가. 브런치라는 우물을 만들어 놓고, 이곳에서 뛰어놀게 해 주고, 가끔은 조회수뽕도 안겨주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작가 지망생들의 플랫폼 아닌가.


물론 이것은 각자 생각하는 '작가'의 정의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지만, 내가 보아온 브런치의 최대 강점은 출판사와 연계한 공모전을 펼침으로써, 출간의 기회를 준다는 데에 있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공모전을 통해 책을 출간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브런치 작가라 함은 다른 말로 대부분 출간 작가를 지망하는, 작가 지망생들이며, 결국 브런치는 작가 지망생들의 플랫폼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출간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 하는 지망생들의 플랫폼. 내가 처음 브런치에 발을 들인 것도 출판사에 투고를 하는 과정에서 한 편집자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연습하기 좋은 플랫폼이 있으니, 그곳에서 한 번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 하는.


물론 출간의 욕심 따위 전혀 없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글쓰기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누군가로부터 인정(글쓰기 권한)을 받고서 글을 쓸 수 있게 됨으로써, 스스로 글쓰기의 수준이 레벨업 되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브런치에서 글쓰기 권한을 부여받는다고 글쓰기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 같진 않다. 그냥 글쓰기 권한을 받음으로써 나 뭐 되나? 하고서 약간 으스댈 수 있는 기분을 가지게 되는 정도랄까.


근데 또 정작 이 권한을 부여받지 못하면 그때는 또 기분이 나빠지기 마련이라 종국에는 브런치 네들이 뭔데 나한테 글쓰기 권한을 주느냐 마느냐 하고 울화가 치밀면서, 에잇 안 해 때려쳐! 하고서 블로그나 인스타, 페이스북에서 글을 쓰는 이들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글을 읽어주는 이도, 좋아여를 눌러주는 이도, 댓글을 달아주는 이도 대부분은 브런치에서 글쓰기 권한을 부여받은, 브런치 작가들이 되어버린 것 같다. 글 쓰는 사람들만 존재하고서, 실 구독자는 그리 많지 않은. 이 모든 것이 그저 추측과 추정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만 구독자 이백여명의 사람이 올리는 글과 구독자 일만 명이 넘는 사람의 글에 달리는 라이킷 수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브런치 계정은 독자가 아니라 휴면계정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얼마 전 보았던 '브런치 작가님들 안녕하세요.' 하고서 시작한 글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게 읽어주는 이는 없이, 쓰는 이들만 남아버린 플랫폼.


몇 년간 지속되어 온 브런치 공모전으로 인해 이곳의 우물은 점점 깊고 커졌으며, 이 안에 들어온 개구리들도 많아졌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대부분 (출간)작가 지망생인 사람들에게 글쓰기 권한을 주고서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니 브런치 내외부 사이에서 혼돈이 오는 듯하기도 하다. 작가는 작가라는데 브런치 작가라는 건 무얼까.


이쯤 되어서 브런치 작가님... 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단어를 붙여보는 건 어떨까.

브런치 개구리님, 이라든지.

개굴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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