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이네요. <그 노래가 내게 고백하라고 말했다>에 실린 한 꼭지를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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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배우기 좋은 나이 일곱 살>
과거 추억을 떠올리며 살아가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단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피아노 학원에 다니라고 등 떠밀던 모친의 제안을 거절하던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그 말이 맞나 보다.
일곱 살 정도였던 거 같다. 그땐 피아노보다 동네에서 공 차고 노는 게 더 좋았다. 피아노 학원은 여자아이들이나 다니는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때 엄마 말을 듣지 않은 게 정말 후회된다. 바보 같은 놈.
성인이 되어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바이엘 하권까지 배우고는 시간 탓을 하며 그만두었다. 이미 굳어버린 손가락이 원망스러웠다. 그때부터라도 꾸준히 쳤다면 피아노 경력 20년은 되었을 텐데. 바보 같은 놈.
지금은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남자를 보면 그게 참 멋있고 부럽다. 내겐 하나의 로망이 된 것이다. 특히나 피아노 치는 모습이 멋진 남성 뮤지션이 둘 있는데 한 명은 벨기에 뮤지션 시오엔Sioen이다.
한국에서는 그의 데뷔 앨범에 실린 〈Crusin’〉이 한 의류 CM송으로 쓰이면서 알려졌다.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와 다니엘 헤니Daniel Henney가 나오던 광고였다. 나만 알고 싶었던 좋은 곡인데 CM송으로 쓰이면서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곡이 되었다.
데뷔 앨범을 제외하곤 라이선스가 안 된 탓에 해외 직구로 그의 음반을 구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 내한이라도 할까 싶었는데 세월이 흘러 시오엔은 한국을 제집 드나들듯 들어온다. 각종 방송 출연은 물론이요, 백화점 문화센터 공연까지 섭렵하고 있다.
시오엔의 여자 친구가 한국인이라던가? 시오엔의 SNS를 보면 김치를 포함한 한식도 즐겨 먹으니 이제는 반 한국인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시오엔은 국내에서 〈홍대〉라는 곡도 발표했고 한국 뮤지션들과 콜라보 앨범도 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피아노 치는 멋진 남성 뮤지션 다른 한 명은 프랑스 뮤지션인 미셀 뽈나레프Michel Polnareff이다. 두꺼운 하얀 테의 라이방이 트레이드마크인 아주 멋진 영감님. 젊은 시절 청년 미셀 뽈나레프는 삐쩍 말라 가냘픈 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탄탄한 근육남이 되어 나타났다. 백발의 노인이 된 지금은 조금 덜하겠지만 말이다. 대체 그의 삶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동네에 좋은 헬스클럽이라도 들어섰던 걸까?
1966년에 발표한 미셀 뽈나레프의 〈Love Me Please Love Me〉를 정말 좋아한다. 곡 제목에 콤마가 한 번 들어가는데 정확히 어디에 콤마를 찍는지 늘 헷갈리는 곡이다. 사실 어디에 콤마를 찍어도 비굴한 제목인 건 똑같다.
사랑해줘, 제발 나를 사랑해줘.
사랑해줘 제발, 나를 사랑해줘.
이것 봐. 둘 다 비굴하잖아.
<Love Me Please Love Me〉는 도입부 피아노 연주가 환상적인 곡이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그의 손가락을 보고 있노라면 손가락 하나하나가 발레를 하듯 우아하고 현란하게 움직인다. 미셀 영감님이 몸이 좋아져서 그런지 1960년대 녹음한 스튜디오 버전 보다 최근 라이브에서 연주하는 버전이 더 듣기 좋다. 예전에 비해 피아노 연주에 악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공연에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면서는 관중들의 떼창도 어마어마하다.
누군가 피아노 연주가 좋은 곡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어김없이 가장 먼저 소개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실제로 살면서 몇몇에게 호기롭게 추천했지만 〈Love Me Please Love Me〉는 호불호가 좀 갈리는 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성을 쓰며 노래한 미셀의 보컬이 소름 끼친다는 반응도 있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음악 역시 듣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가질 테니 그러려니 싶지만, 나는 그런 미셀 보컬마저 소름끼치게 좋아한다. 피아니스트로 뿐만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미셀 뽈나레프를 좋아한다.
미셀 뽈나레프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뮤지션이다. 그의 곡 〈Qui A Tue Grand’ 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는 〈오월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불리기도 했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셈이다. 매년 5월 18일이 되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두고 말들이 많던데. 그냥 미셀 뽈나레프 영감님을 한 번 초대하는 건 어떨까? 미셀 뽈나레프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직접 듣게 된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일 것 같다.
아들 1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예전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이 피아노 학원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지 않아 후회하는 내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후회의 대물림을 막아보고 싶었다.
“피아노 배워. 피아노 배우면 나중에 예쁜 여자 친구 사귈 수 있어.”
“엄마보다 더 예뻐?”
아이에게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시기였을까. 아들 1호는 피아노 학원을 거절했고 태권도 학원에 다녔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네 살 터울의 아들 2호가 일곱 살이 되었다.
“피아노 배워. 피아노 배우면 나중에 예쁜 여자 친구 사귈 수 있어.”
아들 2호는 얼마 전부터 동네 피아노 교습소에 다니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나에게 그랬듯, 내가 아이들에게 그랬듯, 어쩌면 일곱 살은 피아노를 시작하기 좋은 나이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