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뭐길래

by 이경



내 삶에서 인생책 하나를 꼽으라면 2017년 필요한책 출판사에서 엄인경 번역으로 출간한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단카집 <한 줌의 모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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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책 출판사에서는 2017년과 2018년에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한 줌의 모래>와 <슬픈 장난감>을 연달아 출간했는데 몇 년이 지나 이 책들은 정가의 10배쯤 되는 가격으로 중고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나는 두 종 다 있지롱~)


필요한책 출판사 대표님은 이러한 중고가에 화가 나셨는지, 어떤 기분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국 <한 줌의 모래>와 <슬픈 장난감>의 합본집을 내게 이르는데...( 운운...)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선집은 민음사 버전으로도 읽어보았는데 필요한책의 엄인경 버전처럼 세심한 맛깔스러움이 없고 몹시 투박한 느낌이었다.


히라가나만 세 번 정도 외우기 시도하다가 굳어버린 머리통을 탓하며 때려친 나는 일본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확실히 엄인경 번역의 글이 스고이 데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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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나는 작가 지망생으로 매일 같이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거절을 받으며 하루하루 죽고 싶은 심정으로 지내곤 했다. 그 시절 <한 줌의 모래>를 옆에 끼고서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부러 이시카와의 단카를 읽었다.


<한 줌의 모래>는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서문 페이지부터 사람을 울리곤 하는데 그 내용이 이러하다.

'이 가집의 원고를 책방에 넘긴 것은 네가 태어난 날 아침이었다. 이 가집의 원고료는 너의 약값이 되었다. 그리고 이 가집의 견본쇄를 내가 교열한 것은 너를 화장한 날 밤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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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모래>를 처음 읽을 때 이 서문을 읽으면서 좀 많이 울었다. 오늘 유퀴즈에 방송인 이금희가 나와서 그런 말 하던데. 옛날에는 유아 사망률이 지금과 다르게 높았다고. 이금희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는데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살던 100년 전에는 오죽했으랴.


그럼에도 아이를 화장한 날에도 책의 견본쇄를 교정하였다는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글과 그의 심정을 생각하며, 도대체 글이 뭐길래, 책이 뭐길래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글이라는 게, 책이라는 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글을 보이고서 하루하루 거절을 당하며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질 만큼, 죽은 아이를 화장한 날에도 손에서 놓지 못할 만큼의 그러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글 따위가.

책 따위가.


첫 책 <작가님? 작가님!>을 출간하고서 출판사에서는 필요한책 출판사에 책을 보내드리기도 했단다. 내 첫 책 <작가님? 작가님!>에서 필요한책 출판사에서 나온 <한 줌의 모래>를 이야기한 까닭이니 나로서는 이래저래 인생책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작가 지망생으로 지내던 그 시절 <한 줌의 모래>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고 싶다는 그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글쓰기도 책 쓰기도 모두 놓아버리지 않았을까.


몇 년이 지난 오늘에서도 한 번씩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한 줌의 모래>를 꺼내 읽는다. 문득 내가 이겨내기 힘든 우울함이 나를 휘감을 그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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