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스나 쇼츠 따위를 보다가. 며칠 전에는 성룡이 자신의 젊은 시절의 영상을 보며 눈물짓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제는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20여 년 전 현역 시절 프리킥을 차는 모습을 보는 것을 보았다. 그 영상에서 데이비드 베컴의 표정이 정말 묘했는데... 성룡처럼 금방 눈물을 터트릴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조금은 쑥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간간이 짓는 옅은 미소에서는 어쩐지 씁쓸함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현역이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시간의 흐름에 이제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몸뚱이를 가진다는 것. 어쩌면 자신들의 화양연화를 영상으로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서글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룡이나 베컴처럼 꼭 유명한 이들만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마치 십 대나 이십 대처럼 보이게 만들어주는 어플을 사용하면서 웃고 우는 노인네들을 보면 어쩐지 똑같이 웃고 울고 싶어 지니까.
문학에서 가장 흔하게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인생무상 아닌가. 성룡이나 베컴, 또 이름 모를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근사한 문학작품을 접한 것처럼 인생무상을 느낀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러한 인생의 허무함을 어느 정도 미룰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을 쓰는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어 현역에서 물러나야만 할 때, 글쟁이들은 타자기를 두드릴 수 있는 손가락 힘만 있다면 어떤 나이에서든 현역이 가능하다. 글을 쓰는 데에는 성룡의 스턴트도, 베컴의 마법 같은 오른발도 필요 없으니까.
그러다가 어쩌면 젊은 시절 못지않은 화양연화를 노년에 다시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가끔 글을 쓰는 이들의 나이를 체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제는 칠십 대 중반에 접어든 김훈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이를 문득 떠올릴 때 깜짝 놀라는 것도, 나는 여전히 그들이 육십 대 정도의 사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