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책 <난생처음 내 책>을 쓸 때만 해도, 하루에 먹는 알약이 두 개였는데, 그 후로 네 개가 되더니 며칠 전부터는 일곱 알로 늘었다.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 어떤 약은 평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약은 먹다가 끊을 수도 있다지만, 약 하나가 늘어날 때마다 가슴 한 켠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듯 마음이 무겁고 침울해진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재미난 글 하나를 읽었는데, 사람의 수명은 원래 사흘에 불과하지만 물과 음식이 그 수명을 늘려준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내가 먹고 있는 약들을 끊게 된다면 나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전쟁이나 화재 따위로 병원과 약국이 파괴되는 상상을 하는 일이 늘었고, 몇 달치의 약을 받아오는 날에는 어쩐지 모를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약에 의지하는, 약의 노예가 된 셈이다.
오늘은 문득 알약을 삼키면서, 혹시 내가 먹는 약의 개수와 내가 쓸 수 있는 책의 종수가 비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일곱 알의 약을 먹는 요즘 나는 여섯 번째 책을 쓰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한 종의 책을, 스무 권만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스무 알의 약을 삼키고픈 생각은 없으니까. 여섯 번째 책을 내고 나면 조금은 천천히 써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먹는 약을 늘려야 했던 그 어느 시기에는 자주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세상 대부분의 일에 심드렁해버렸다. 요즘에는 외려 먹는 약은 늘었어도,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 들어서인지 화가 나는 일이 하나둘 늘어난다. 글쓰기 실력이 형편없는 출판에이전시 대표의 책을 봐도 그렇고, 링크트리에 '커피 한 잔으로 작가 응원하기' 따위의 개똥망 같은 링크를 걸어놓은 글쓰기 강사를 봐도 그렇다.
사진은 한 독자가 찍어서 보내준.